[김동섭의 아웃룩] '삑' 세대와 '삐빅' 세대의 악수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입력 2019.05.15 03:13

720만 전후세대 내년부터 '노인' 진입… 5년 후 노인 1000만 넘어
국민연금·노령연금·건강보험 등 사회 곳곳서 세대 갈등 파열음
2022년 대선 때 '정년 연장' 빅 이슈… 청년 고려한 노동 개혁 필요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지하철 개찰구에서 승차권을 대는 모습을 보면 '삑'과 '삐빅'이라는 두 가지 소리가 들린다. '삑'은 64세 이하 승객이 갖고 있는 승차권 소리다. '삐빅'은 65세 이상의 승차권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 소리와 동시에 개찰구 화살표 밑에도 빨간 줄이 뜬다. 지하철 역무원들이 제값 내지 않고 경로 우대 승차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만든 방법이다. 올해 처음으로 경로 우대증을 받아 '삐빅' 세대가 된 한 선배는 지하철 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빨간 선으로 노인을 표시하는 것은 마치 축구 경기 심판의 레드(red) 카드처럼 '노인 무료 승차 금지' 신호 같다"고 했다.

최근 법원이 '노동 가동 연한'을 만 60세에서 65세로 인정하는 결정이 나오면서 노인 연령도 손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다. 지하철공단 측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생긴 노인 무임승차 제도로 적자가 쌓이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복지부도 얼마 전 노인의 외래 진료비 정액·할인 제도 대상을 65세에서 점차적으로 연령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노인 의료비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소득도 없는 노인들에게 진료비를 더 깎아주기는커녕 올리는 것은 안 된다"며 노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베이비부머 내년부터 65세 진입

'삐빅' 세대와 '삑' 세대 간의 잠재된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내년부터 집단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갈등이 더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갑자기 많이 태어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0만명이 내년부터 차츰 65세에 진입한다. 5년 후에는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다. 더욱이 수명은 길어져 65세의 예상 기대 수명은 85.8세로 노인복지법이 만들어진 1981년(78.6세)보다 무려 7.2년을 더 오래 산다.

일손 놓고 사회보장제도에 얹혀 가야 할 사람이 급증하면서 앞으로 병원, 노인 요양 시설 등은 미어터지게 된다. 건강보험은 물론 국민연금도 재정 고갈 위기에 처하면서 누가 돈을 더 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세대 갈등이 요동칠 것은 뻔하다. 간병인 구하기도 힘들고, 노인 간병비 부담은 누가 대느냐로 가족 간 다툼도 커질 것은 당연하다. 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혜택받을 사람만 늘어나는 사회는 우리가 바라던 젊고 활기찬 사회와는 점차 거리가 멀어진다.

젊은 세대는 줄고 노인만 늘어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노인 세대는 사회 안전망이 너무 허술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정년은 60세인데 국민연금은 현재 62세에 타고, 앞으로 5년마다 한 살씩 올려 2033년부터 65세에 타도록 되어 있다. 국민연금 타는 나이를 정년에 맞춰 조정해야 했는데, 정년은 그대로 두고 연금 타는 나이만 불쑥 높여 놓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퇴직 후 2년 연금 공백기가 있는데, 앞으로는 최장 5년까지 공백기가 생긴다. "노후에 믿을 것은 연금뿐인데 어찌 살라는 말이냐"는 반발이 나올 건 뻔하다. 공무원이나 교직원들은 지금 60세부터 연금 탈 수 있는 데 비해 국민연금만 불리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불만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2022년쯤 정년 연장 논의 본격화할 듯

노인 연령 조정은 이처럼 쉽게 손댈 수 없는 금단의 열매다. 당장 내년이 총선이고, 대선도 코앞에 다가온다. 노인 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노인 연령 조정의 칼날을 휘두를 정치인은 없다. 이 때문에 노인 연령 조정은 정년 연장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산 연령(15~64세) 인구가 올해부터 2030년까지 364만명(9.6%), 2050년까지는 1310만명(34.9%)이 줄어 생산 현장마다 일손 부족의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누가 이들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 소멸 위기에 처한 한국으로 이민 가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지금은 청년 세대의 취업난 때문에 누구도 정년 연장을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2022년부터는 취업 연령층인 20대 후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정년 연장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22년 대선이 되면 정년 연장이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각종 선거 때마다 실행 여부를 떠나 50대나 60세 이상의 표 힘이 커지는 만큼 선거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60세 이상이 유권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차기 총선에서는 네 명 중 한 명꼴(27.1%)이 되고, 2022년 차기 대선에서는 29.5%, 차차기 대선(2027년) 때는 세 명 중 한 명꼴(34.6%)로 높아진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나이만 뚝딱 올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 타는 나이에 맞춰 퇴직할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고, 최소한 임금피크제로 기업의 현실적 부담을 줄여주도록 해야 한다. 특히 청년층은 정규직에 쉽게 진입하도록 만들고, 정년이 임박한 사람들은 비정규직 형태의 일자리로 옮겨 오래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하철 승차권을 개찰구에 제대로 대지 않으면 '삑삑삑' 경고음이 울린다. '삑'소리가 세 번 연거푸 나지 않도록 '삑'세대와 '삐빅' 세대가 서로 어울려 악수하는 일자리 대타협이 필요하다.


조선일보 A29면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