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칼퇴근 판사에게 재판받기 싫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입력 2019.05.15 03:17

인권법 판사보다 게으른 판사가 더 무섭다
주 52시간 기자에게 비밀을 말할 취재원도 없다
엘리트가 늘어지는 건 나라가 퇴보한다는 신호다

선우정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회부의 주요 직무는 후배 교육이다. 수습기자 전원이 사회부에 소속돼 언론의 가나다를 배운다. 수습이 끝나고 신입 기자들은 1~2년 정도 사회부에서 일한다. 학력이 아무리 대단하고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현실에 들어가면 달라진다. 이런 후배를 홀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부 역할이다. 현장 기자·팀장·차장·부장을 사회부에서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선배가 이 역할을 게을리하면 후배들이 중견 기자 위치에 올라오는 10년 후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책 '아웃라이어'는 1만 시간을 '위대함을 낳는 매직 넘버'라고 했다. 1만 시간을 연습해야 작품이 나온다는 법칙이다. 나는 이 법칙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저자가 예로 든 모차르트나 비틀스 같은 천재들 이야기다. 주 52시간씩 3년 넘게 일하면 1만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내가 3년 차 기자 때 쓴 현장 칼럼은 선배한테 절반 이상 난도질당해 제3의 칼럼으로 재탄생했다. 주 6~7일, 하루 15시간씩 회사 일에 매달리던 때였으니 1만5000시간 정도 흘렀을 것이다. 그래도 그 모양이었다. 기자에게 1만 시간은 기본기가 몸에 들어오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직업도 비슷할 것이다.

그동안 사회부 역할은 이 기간을 최대한 압축해 기자 '한몫'을 다른 부서에 빨리 공급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수습기자는 반년 동안 경찰서에서 숙식하고 24시간 대기하면서 일했다. 그 후 1~2년 신입 기자 시대 역시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 외엔 생활이 다를 게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됐으니 몸과 시간으로 때우는 교육을 그만하라고 한다. 그럴 생각이 없다. 기자는 몸과 시간을 현장과 사람에게 투입하는 직업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야 무언가를 얻는다. 현장과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손바닥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미숙련 기자에게 내 비밀을 이야기할 취재원은 세상에 없다.

내가 '한몫'이 된 때를 생각해 본다. 늦된 천성이라 대략 입사 10년 후였던 것 같다. 그때 정말 혹독한 선배를 만났다. 날마다 오후 2시 30분까지 원고지 7~15장에 이르는 기사를 올려야 했기 때문에 그를 만난 2년 동안 여유 있게 점심을 먹은 일이 없다. 그렇게 기사를 보내면 기사 절반이 삭제된 채 반송됐다. "내가 지운 절반은 너의 헛소리이니 팩트로 채우라"는 식이다. 다시 취재해 절반을 메우면 그중 절반이 다시 지워져 돌아왔다. 매일 이렇게 완고를 만들었다. 같은 처지의 기자 몇 명은 퇴사했다. 몇 명은 소심한 반란도 일으켰다.

2년이 지나고 조직의 긴장이 임계점을 넘을 무렵 깨달았다. 그가 삭제한 내 기사 절반이 정말 나의 헛소리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한몫'이 됐다고 여긴다. 존경하진 않지만 그 선배가 고맙다. 기사 하나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이리처럼 달려드는 선배도 이제 드물다.

잘나서가 아니라 위험해서 중요한 직업이 있다. 기자가 중요한 것은 잘못된 기사가 사람을 현혹해 세상을 뒤집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숙한 기자, 게으른 기자가 가장 빨리 현혹되고 가장 먼저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래서 기자는 많은 시간을 투입해 현장과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글에는 자신의 판단을 죽이고 팩트를 담아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거꾸로 돌아간다. 심지어 부작용을 매체의 영향력으로 착각한다.

평판과 대접은 다르지만 판검사와 의사도 비슷하다. 잘못된 판단이 사람의 명예를 짓밟고 생명을 빼앗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검찰이 '인권의 위기'라며 수사권을 두고 경찰과 싸운다는 소식은 안다. 하지만 피의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경찰이 요구한 영장을 청구하는 검사,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고민 없이 발급하는 칼퇴근 판사가 인권을 더 해친다는 건 잘 모른다. 사람들은 인권법 판사의 편향성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공사다망해 기록도 읽지 않고 검찰 공소장 그대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웰빙 판사가 훨씬 무섭다는 것은 잘 모른다. 판검사 역시 워라밸, '3×3년' 육아휴직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밤새 공부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판검사에게 자신의 명예와 신체의 자유를 맡기기 원한다.

판검사와 기자만이 아니다. 의사·관료·기술자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북유럽 선진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엘리트가 놀기 시작했다는 건 나라가 퇴보하고 있다는 신호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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