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슈피겔이 전한 독일의 '탈원전 반면교사'

박은호 논설위원
입력 2019.05.15 03:15

한국이 따라 한 독일 에너지 정책… 슈피겔 "혼란스럽고 부당한 拙作"
온실가스 감축도 실패하고 태양광·풍력 보조금은 재로 변해

박은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의지가 예전만큼 강하지 않다"는 말이 요즘 관가에 돌고 있다고 한다. 지난 2년간 밀어붙인 탈원전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정황이 있다. 정부는 5년 주기의 에너지 기본 계획과 2년 주기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올해 확정해야 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작성해 유엔에 제출하는 시한도 내년으로 다가왔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석탄, LNG 발전(發電) 비중을 정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석탄발전 대폭 감소, LNG 확대'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온실가스 목표 달성이 가능한 안을 짜기 어렵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의지 후퇴'가 사실이라면 정책 담당자들은 한결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 말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에너지·온실가스 관련 부처 공무원은 최근 발간된 독일 주간지 슈피겔(Spiegel) 커버스토리를 정독했으면 한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기자 네 명이 '독일의 졸작(拙作)' 제목을 달고 긴 기사를 공동 집필했다. 표지는 날개 꺾인 풍력발전기, 전선 끊어진 송전탑 그래픽으로 장식했다. 이 음울한 독일의 현재 풍경은 10~20년 뒤 한국 모습이 될 수도 있다.

탈원전 정책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00년 6%에서 35%로 끌어올린 독일을 본떴다. 우리도 2017년 8%→2030년 20%→2040년 35%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슈피겔은 태양광·풍력 붐을 일으킨 독일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망가졌고 실패 조짐이 있다"고 썼다. 매년 42조원씩 들여 태양광·풍력을 늘렸지만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독일이 국제사회에 공언한 2050년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3~5배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도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버리고 재생에너지를 선택했지만 전력 수요를 감당하느라 석탄화력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조금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독일 정부가 최근 5년간 지출한 태양광·풍력 보조금이 매년 33조원이다. 이 보조금은 전기 요금을 올려서 충당한다.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극단을 오가는 태양광·풍력의 간헐성 문제에 대응하느라 송·배전 관리비가 한 해 10조원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이 역시 전기료로 국민에게 청구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년간 독일인들은 "우리가 에너지 전환의 개척자"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 전환을 "비싸고 혼란스럽고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풍력발전소, 송전선을 건설하는 곳마다 주민들이 반발하고, 정치인과 관료는 손을 놓고 있으며, 그 결과 태양광 붐에 이어 풍력 붐도 끝나고 있고,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빠르게 타오르는 마른 짚"이 됐다는 것이다. 전기 요금으로 충당한 보조금이 잠깐 성과를 올렸지만 이내 재로 변해 버렸다는 것이다.

정부는 독일이 걸은 그 길을 따르겠다고 한다. 숲을 없애고 산을 깎은 태양광에 작년 한 해 지급한 보조금이 1조1771억원이고, 재생에너지 전체로는 2조6000억원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보조금 규모는 곧 10조원대로 껑충 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결국 탈원전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당장 전력 부문에서 온실가스를 3410만t 줄여야 하는데 정부 부처에서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을 짜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원전을 절대악으로 여기는 탈원전 교조주의를 버려야 답이 보인다. 슈피겔은 '거울'이란 뜻이다. 그 거울에 비친 독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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