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차이를 찾는다, 난 불가능을 깨는 탐험가"

바젤(스위스)=최보윤 기자
입력 2019.05.14 03:01

[스틸리오니]
세계서 가장 두께가 얇은 시계 '옥토 피니씨모'로 기네스 기록한 불가리 시계 총괄 디자이너

지난 3월 스위스 최대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에서 이 남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팬들을 줄 세웠다. 무브먼트 두께가 불과 3.3㎜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것) 시계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오토매틱'을 만들어 기네스에 오르게 한 주역. 8각형 외형의 옥토 피니씨모 시리즈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 기록을 깨며 스위스 고급시계협회상을 비롯, 40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매체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1972) 시리즈,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1976) 시리즈를 디자인한 제럴드 젠타의 명성을 잇는 디자이너로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사 스틸리오니(48)를 꼽는다.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는 불가리 시계는 지난해 전년 대비 12% 성장했다.

불가리 시계 총괄 디자이너 스틸리오니(위)가 만들어 기네스에 올린 '옥토 피니씨모'(아래 왼쪽)와 스케치(아래 오른쪽). 그는 "시계의 유연한 곡선이 자동차 디자인과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불가리
이탈리아 자동차 피아트 디자이너를 거쳐 2001년 불가리 디자이너로 합류한 스틸리오니를 최근 바젤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세상에 없던 디자인에 도전장을 내미는 탐험가"라고 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왜 안 돼?'라고 반문하는 게 중요했다"며 싱긋 웃었다. "뭐든 층층이 쌓고 덧붙이는 건 쉬워요. 하지만 덜어내면서 최대한의 기능을 보여주는 건 힘들지요. 15분 만에 달에 가는 세상에 언제까지 50년 전 시계 제조 방식을 고집한다는 건가요?"

불가리는 앤디 워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같이 대담하고 강렬한 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화려한 보석과 커다란 부피감으로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게 특징이었지만 시계에선 발목을 잡았다. "매일 착용하는 이들에게 불가리는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죠. 주류 제품들을 보면 동그란 케이스에 평범한 시곗줄, 똑같은 숫자, 거기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는 식으로 덜 개성적인 디자인이었으니까요." 그는 아예 극적인 스타일을 선택했다. 2008년 뱀 모양의 '세르펜티 투보가스' 디자인을 내놨을 때 직원들은 "여자들은 뱀을 무서워한다"며 반발했다. "뱀이 아니라 똬리를 틀듯 유연하게 손목에 안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성공은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죠. 그저 화려하고 컬러풀하게 꾸미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는 어린 시절 만화를 즐겨 그리던 아이였다.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요즘도 하루 12시간 이상 스케치를 한다. "스케치에 재능 있다는 부분에서만큼은 겸손하지 않을게요. 중요한 건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한계를 뛰어넘는 것! 참을성 있게 0.0001%의 차이를 찾아내야 합니다."



조선일보 A22면
베르나르 뷔페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