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디지털 효도

박순찬 산업2부 기자
입력 2019.05.14 03:12
박순찬 산업2부 기자
1947년 전남 영광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식당 일, 가사 도우미까지 안 해본 일 없이 3남매를 키웠다. 가정 형편 때문에 자식들 대학 못 보낸 건 한(恨)이다. 위로 언니 셋 모두 치매에 걸렸고 자신도 나이 칠십에 병원에서 '치매 가능성 있다'는 말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의 CEO (최고경영자), 유튜브 CEO가 잇따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할 만큼 인기 스타가 된 '할머니 유튜버' 박막례(72)씨다. 한국 어디에든 있을 것 같은 '또순이 할머니' 박씨는 어떻게 2년여 만에 유튜브 스타가 됐을까. 최근 박씨와 손녀 김유라(29)씨를 만나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가족의 '디지털 효도'였다. 박씨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은 꿈도 못 꿨다. 전화를 걸고 받는 게 전부였다. 손주들은 전화 켜고 끄는 법부터 문자 보내기까지 하나하나 종이에 적어가며 가르쳐줬다. 실수해도 몇 번이고 "할머니, 다시 해보세요"라고 했다. 박씨는 "친구들은 '아니 엄마는 이것도 못해' '할머니는 왜 가르쳐줘도 못해'란 얘기에 자존심 상해 포기했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애기(손주)들은 안 그랬다. 그게 제일 고맙다"고 했다.

유튜브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인 것도 연기 학원 강사로 일하던 손녀 김유라씨의 덕이었다. 김씨는 할머니가 치매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훌쩍 사표를 던지고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났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해야 하는 성격"이라는 '밀레니얼 세대' 김씨가 그때 꽂힌 건 "식당 일 하느라 아무것도 못한 불쌍한 할머니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유튜브가 처음부터 목적은 아니었다. 가족끼리 돌려 보기 위해 할머니와의 호주 여행 영상을 찍었고, 별도의 로그인(ID 접속) 필요 없이 영상을 볼 수 있는 유튜브에 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졌다. 현재 구독자가 86만명이다.

또 다른 비결은 '70년 인생'이란 콘텐츠다. 박씨의 메시지는 평범하지만 울림이 있다. 학생들에게는 "공부가 인생의 다가 아녀, 사람 됨됨이가 첫째지"라고 한다. 인생 좌우명은 "내가 손해 볼지언정 절대 넘(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는 것이다. 동영상은 수수하다. 일부러 꾸민 것은 없다. 박씨가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비빔국수를 만들고, 화장하는 모습 등 자연스러운 일상을 촬영했다.

'우리네 할머니'의 얘기가 유튜브란 새로운 채널에 세련된 감각으로 편집한 영상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 젊은 구독자를 만났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박씨 영상의 댓글에는 '할머니 덕에 웃고 울고 감동하고 갑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란 반성이 유독 많다. 세대 간 갈등도 이렇게 풀릴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박막례씨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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