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프랑스 혁명정부가 부추긴 재봉사들의 게으름

이진석 사회정책부 차장
입력 2019.05.14 03:15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 같은 공임이면 누가 일하나
경쟁 白眼視하는 정부 정책… 시장의 반격 부를 것

이진석 사회정책부 차장
124년 전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에 프랑스 정부가 군복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가 혁명으로 어지럽던 1848년 군복 만드는 기술자 봉급 주는 법을 정했는데 "그 어리석음이 심해 천고(千古)의 기담(奇談)이 되었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재봉사 1500명을 직접 고용하고, 숙련도나 기술 차이를 따지지 않고 모두 똑같은 공임(工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누구는 손이 빨라서 공임 많이 받아 가고, 누구는 일이 서툴러서 적게 받는 일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군복을 만들어 납품한 만큼 공임을 지급할 때가 됐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공임이 기대에 미치기는 고사하고 하급 기술자의 반나절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여서 모두를 실망시켰다"고 했다. 재봉사들이 납품한 군복이 예상보다 너무 적어 아무리 정부에서 후하게 쳐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유길준은 이렇게 썼다.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재봉사들의 게으름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게으르게 일하고도 그 공임을 부지런히 일한 자들과 같이 받는다면 어느 누가 게으르지 않겠는가. 또 부지런히 일하고도 그 공임을 게으른 자들과 같이 받는다면 어느 누가 부지런히 일하겠는가."

19세기 프랑스 재봉사들만 그럴 리 없다. 동서고금 다 같을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경쟁과 창의와 의욕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눈치 보기와 게으름이 채우게 된다. 모두가 누군가 일할 것이라고 미루면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가 된다.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똑같이 잘사는 나라는 땀을 흘리고 밤을 새워도 만들기 어렵지만, 똑같이 못사는 나라는 아무 노력도 필요 없고 쉽게 만들 수 있다.

15일 전국 9개 지역 노선버스들이 파업을 예고했다. 요구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근무시간 줄어도 월급 깎지 말라고 한다. 이참에 적자가 나면 지자체가 메꿔주고, 흑자가 나면 버스 회사가 갖는 버스 준(準)공영제 확대까지 요구한다. 일은 덜 해도 월급은 그대로 받고, 회사가 적자가 나도 지자체에서 월급 받겠다고 한다. 버스 요금 인상이든, 버스 기사 월급을 세금으로 주든 다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갈 돈이다. 정부는 이걸 들어줄 모양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나서서 "대중 교통수단은 점차적으로 준공영제를 실시하는 쪽으로 당의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1년 전 근로기준법 개정하면서부터 '버스 대란'이 예견됐는데도 "지자체 문제"라고 뒷짐을 지고 있다가 급하게 되니 세금 퍼부어 막겠다고 한다. 준공영제는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서울 등 7곳만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 등 나머지 10곳까지 하려면 1조원은 쉽게 넘어가는 큰돈이 필요하다.

지난 3월에는 택시 기사 월급제를 시행하겠다고 했다. '우버' 같은 공유 차량 서비스 도입 대가로 택시 노조에 '선물'로 줬다. 택시는 열심히 하는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의 벌이 차이가 크다. 월급쟁이가 된 택시 기사들이 과연 지금처럼 일할까?

이 정부의 노동 정책은 간단하다. 경쟁은 힘들고 불편하다고 한다. 이 정부는 노동 개혁한다고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백지화했다. 열심히 해서 월급 더 받아 가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 차별하게 된다고 한다. 경쟁은 시장을 돌아가게 하지만,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왜곡하고 반격을 부른다. 유길준의 결론은 이랬다. "민간의 사무에 대하여 정부가 그 방법을 간섭하면 안 된다."


조선일보 A35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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