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허무하게 지나가는 30년 만의 세계 호황

김대기 前 청와대 정책실장·단국대 초빙교수
입력 2019.05.13 03:17

미국 금리 올릴 때 세계경제 요동… 다시 불황 오면 각자도생
미·중·일·유럽 나름 대비책 갖춰… 한국은 위기 오기 전에 마이너스
부동산·세금·소비 절벽 눈앞… 정책 실험할 여유 없어

김대기 前 청와대 정책실장·단국대 초빙교수
지난해까지 호황을 누리던 세계경제가 금년 들어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반짝 성장세를 보였지만 IMF 같은 국제기구나 경제 전문가들은 향후 경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미국 연준이 기준 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세계경제가 요동쳤다. 2005~2006년 1% 금리를 5.25%까지 올리자 글로벌 금융 위기가 도래했고, 1994~1995년 3%에서 5.5% 인상 후 아시아 경제 위기가 왔다. 이후 높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남미 경제 위기가 왔다. 현재 기준 금리 2.5%는 절대 수준은 높지 않지만 2015년 0.25%에 비하면 무려 10배나 올랐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파급이 없을 수 없다. 근자에 미국 장단기 금리 격차가 축소된 것도 좋지 않은 징조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반드시 불황이 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세계 불황이 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시에는 선진국들이 사상 최대 규모로 돈을 풀고, 중국이 엄청난 경기 부양을 하면서 극복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다. 유럽이나 일본은 아직 제로금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국은 부채가 많아져 제약이 많다. 미국 역시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못해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재정 적자도 이미 너무 커져서 더 이상 풀기가 어렵다. 브렉시트, 이란 제재 같은 지정학적 요인도 발목을 잡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촉발한 자국 우선주의로 인해 국제 공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하는데 지난 2~3년 호황기에 대비를 잘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미국이 가장 나은 것 같다. 그나마 금리를 제법 올려놓았고, 교역 상대국에 통상 압박을 가하면서 실리도 얻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4차 산업도 가장 활발하다. 유럽은 기대보단 못하지만 지난해 양적 완화를 중단할 만큼 사정이 나아졌고, 일본 역시 구인난에 시달릴 정도로 좋아졌다. 중국은 과잉 부채와 미국 통상 압력으로 몸살을 겪고 있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전기차 등 미래 먹거리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고 일대일로의 야망도 키워가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경제의 호황기 성적표는 초라하다. 본격적인 침체도 오기 전에 거의 모든 분야가 '-'로 돌아섰다. 민간 부문은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실적이 악화되면서 급기야 1분기 GDP 성장이 전기 대비 -0.3%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동 기간 미국 0.8%, 유럽 0.5% 성장과 대비된다. 경제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은 5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공공 부문 역시 취약해졌다. 지난해 339개 공공 기관의 순이익이 2년 전 15조원 흑자에서 1조원으로 줄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었다기보다는 대부분 탈원전, 정규직화, 복지 포퓰리즘 같은 이념적 요인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에 골몰하던 국민연금 역시 수익이 10년 만에 처음 적자로 전환되었다. 공공 부문에서 적자가 발생하면 피해는 국민 몫이다. 이미 건강보험료는 크게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아픈 것은 국가 전체의 빚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BIS에 따르면 우리 빚은 2년간 GDP 대비 4.4%가 증가했는데 부채로 고통받는 중국의 4.1%보다 더 많다. 미국·유럽·일본 등 여타 선진국은 모두 줄었다.

호황기에 유독 우리 경제만 이렇게 초라해지는 것은 사실 예견된 것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소득 주도 성장이나 반기업 정책에 대해 그렇게 우려를 표했건만 정부가 이념에 사로잡혀 귀를 닫은 결과이다. 우리는 30년 전 세계 호황기에도 일시적 성취에 빠져 경제를 그르친 적이 있다. 선진국이라도 된 양 매년 임금 대폭 올리고, '미래 먹거리'보다는 민주화 이념에 올인하다가 대량 실업의 봉변을 당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호기 어린 발언은 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과 유사한 면이 많다. 그래도 당시에는 미국이 도와주었기에 망정이지 지금은 도와줄 우방도 없다.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이 땅에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통상압력, 부동산 절벽, 소비 절벽, 세금 절벽 등 앞으로 다가올 악재는 수두룩하다. 조만간 닥쳐올 세계경제 불황까지 감안하면 이제는 정책 실험을 할 여유가 없다. 경제 회생을 재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제는 정책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조선일보 A38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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