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 붙들고 50년… 기다린 고도는 오지않고 알츠하이머가 찾아왔다

박돈규 기자
입력 2019.05.11 03:01

[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고도를 기다리며' 연출가 임영웅

임영웅이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 앉아 있다. 올해는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 50주년. 알츠하이머를 앓는 그는 "전엔 인물들에게서 코미디를 끌어내려 했는데 요즘엔 연민을 더 느낀다"며 "50년 넘게 고도를 기다린 광대들이 내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에 시간이 멈춘 괘종시계가 걸려 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12시 5분 전'이다. 고장 난 것도 아니고 장식품도 아니다. 카페 주인은 "연출가 임영웅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했다.

임영웅(83)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로 기억되는 연출가다. 서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1970년대에 허리 디스크를 앓고 나서 몸이 약간 기울어졌다. 별명이 '움직이는 피사의 사탑'. 시간이 멈춘 괘종시계는 비스듬하게 서 있는 그를 표현한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이 50돌을 맞았다. 반세기 동안 국내외에서 약 1500회 공연(누적 관객 22만명)했다. 올해는 국립극단 기획으로 지난 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한 작품과 50년을 씨름한 연출가가 또 있을까. 지난달 23일 산울림소극장에서 만난 임영웅은 "전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에게서 코미디를 끌어내려 했는데 요즘엔 연민을 더 느낀다"며 "기약도 없는데 뭘 저렇게 기를 쓰며 기다리나, 하다가도 한편으론 그게 인생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요. 저마다 살면서 뭔가를 기다리잖아요. 부조리극(不條理劇)이라지만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건 아녜요.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풍경 아닌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무대에 올리면 올릴수록 그런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서울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에 있는 괘종시계. 임영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12시 5분 전'에 멈춰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50년이라는 기다림

사뮈엘 베케트(1906~89)가 지은 '고도를 기다리며'(1953)는 기승전결도 논리적 인과관계도 없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50년이 넘도록 고도를 기다려 왔다.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그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자기 삶조차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갇힌 현대인을 포착한 것이다. 임영웅은 1969년 12월 한국일보 소극장에서 이 연극을 국내 초연했다.

―희곡은 첫인상이 어땠나요.

"신문 기자이던 1958년 일본어판을 구해 처음 접했어요. 설렁설렁 읽었지요. 그런데 공연을 하려고 11년 만에 다시 잡으니 그때 그 작품이 아닌 겁니다. 읽는 데 꼬박 사나흘이 걸렸어요. 각 장면을 어떻게 연출할지 그림을 고민하니 전혀 달리 보인 거예요. 난적을 만났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밤샘 연습도 여러 날 했는데 그야말로 악전고투였지요."

―연습 중에 희소식이 날아들었지요.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예요. 그러자 개막 1주일 전에 모든 객석이 판매됐어요(당시 표 값은 200원). 300석 극장에 입석까지 400~500명이 몰렸지요. 지금까지 60년 넘게 연극을 했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고도는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를 향한 기다림으로 해석됐지요. 어떤 외국인은 '고도가 통일이냐?' 물은 적도 있고요.

"작가는 확실히 밝히지 않았어요. 무엇이라고 정해버리면 해석의 자유를 억압하는 꼴이니까. 종교인에게는 신(神), 수감자에게는 석방일 테고, 누구에게는 어릴 적 꿈일지 모릅니다. 연극인에겐 '고도=관객'일 수도 있고요. 살면서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나 믿음, 희망이 있을 겁니다. 내게 고도가 뭐였는지, 지금은 뭔지, 알 것 같다가도 또 제자리네요.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로 50년을 붙들고 있는데 정이 좀 드셨나요.

"일단 작품이 좋잖아요. 희랍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처럼 계속 공연되고 있고. 보편적인 기다림과 절박감, 희망과 절망을 건드렸기 때문이에요. 1988년 서울에서 이 연극을 본 유명 평론가 마틴 에슬린의 격려, 그리고 1990년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공연했을 때 '한국의 고도는 기다릴 가치가 있다'는 평을 받은 게 큰 힘이 됐어요."

―부조리란 무엇인가요.

"기가 막혀 웃는 것입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이 우스울 수밖에 없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할 때는 더 그렇고요."

―전에 '베케트가 내 연출작을 못 보고 죽은 게 서운하다. 한(恨)이다' 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자나 관객이 보기에는 불친절하고 알쏭달쏭한 작가겠지요. 연출가로서 저도 그동안 베케트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게 많았어요. 이제는 그냥 '좋은 작품을 써줘서 고맙다'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 광대들이 내 모습 아닌가?

청소년기에 연극에 빠진 임영웅은 추진력이 남달랐다. 휘문고 2학년이던 그가 6·25 피란지 부산에서 연극예술제를 하겠다며 선배들을 찾아갔다. 백두진 재무장관에겐 기부금 50만환을 불러 20만환쯤 받을 계획이었는데 면전에서 충동적으로 '한 100만환쯤 내셔야 되지 않겠어요?' 했다. 놀란 그가 '장관 월급이 얼마인지 아냐'고 묻자 임영웅은 당돌하게 반문했다. '요새 월급 갖고 장관 하는 사람 있어요?' 백 장관은 껄껄 웃으며 봉투를 꺼내 적었다. '一金 50만환'.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배우들에겐 어떻게 주문했습니까.

"이렇게 설명했어요. '현대인을 발가벗긴 연극이다. 관객은 그들을 보며 낄낄거린다. 그런데 한참 웃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저 광대들이 내 모습 아닌가?'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요즘엔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저는 원작을 한 글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올립니다. 그런데 공연 시간이 10여 분 짧아졌어요. 한국인의 언어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에요. 또 공연 시작하고 20분쯤 지나야 웃던 관객이 요즘엔 처음부터 반응해요.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지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주고받는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같은 대사를 객석에서 관객이 따라 하더군요.

"일본에서 온 연극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관객이 선입견 없이 연극을 즐긴다는 증거라서 저는 기뻤고요."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전무송 주호성 정동환 박용수 송영창 한명구 안석환 김명국 전국환 박상종 등 연극동네의 명배우들이 이 연극을 거쳐갔습니다.

"고인이 된 함현진(에스트라공)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보기에 연극배우는 크게 두 부류예요. 무대에 서면 저절로 분위기가 풍기는 배우,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가 있지요. 함현진은 전자였습니다. 페이소스(pathos·애수)도 있고 발성과 움직임이 다 좋은 유연한 연기자. 그런데 대사를 종종 까먹었어요. 어차피 의사소통이 안 되는 연극이라 함현진은 능청스럽게 즉석에서 대사를 지어냈어요. 관객은 대부분 몰랐고(웃음). 상대역(블라디미르)인 김성옥, 주호성이 응수하느라 고생했지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좋은 배우의 조건이라면.

"연출가와 배우는 서로 의지하는 관계예요. 누가 누구 위에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이 오래 작업한 배우일수록 그런 믿음이 더 생겨요. 뭘 잘하고 뭐가 부족한지도 속속들이 알게 되지요. 배우들도 임영웅이라는 연출가에 대해 기대하는 게 있을 테고요.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면서 서로 발전하는 겁니다."

―극단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역사와 같고 산울림소극장(80석) 개관작도 이 연극이었지요.

"연극은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1980년대에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림길에 섰는데 아내 오증자 교수('고도를 기다리며' 번역자)가 '아예 전용 극장을 짓자'고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결정이었어요. 아내를 전우(戰友)라고 불러요. 집을 헐고 극장을 지었는데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아니었나 싶어요.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도 생겼지요."

―수학적인 연출가로 알려져 있지요. 꼼꼼한 연출 노트가 인상적입니다.

"대사 한 문장에도 배우가 보여줘야 할 동선과 움직임, 포즈와 시선이 다 달라요. 저와 작업을 안 해본 이들은 '배우가 인형이냐?'고 손가락질합니다. 그게 아녜요. 희곡을 분석해 감정의 밑바닥으로 들어가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배우에게 '불편하면 얘기하라'고 해요. 배우가 편안해야 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알츠하이머라는 불청객

몇 해 전부터 지팡이를 짚게 된 이 연출가는 세상에서 조금씩 '실종'되는 중이다. 3년 전쯤 알츠하이머(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인터뷰는 건강 문제로 상당 부분 서면으로 진행됐다. 딸인 임수진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이 도와줬다.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 전시가 개막한 지난 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입원 중에 의사 허락을 얻어 휠체어를 타고 잠깐 외출한 참이었다. 이날 그의 인사말도 임수진 극장장이 대신했다.

―임영웅에게 연극이란 무엇인가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살아 있는 배우가 살아 있는 관객 앞에서 살아 있는 공연을 하지요. 말이나 글이 없던 원시시대에도 연극은 있었잖아요.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피고 지고. 영화나 드라마가 흉내낼 수 없는 연극만의 매력입니다."

―이 황량한 무대에는 물음표(?)를 닮은 나무밖에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갇혀 있는 '뻥 뚫린 감옥'이지요. 힘든데 왜 도망치지 않았나요.

"연극은 늘 존재를 위협받았어요. 활발하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겪은 1950~1960년대였어요. 다들 치열하게 살아갈 때였고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당시 연극인들은 지금보다 순수했어요. 저도 선구자 같은 사명감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임영웅에게는 집이 곧 극장이었다. 대학로나 광화문에서 술을 마시면 273번 버스를 타고귀가했다. "다음 정류장은 산울림소극장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 번쩍 술이 깨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곤 했다. 연극평론가 유민영은 "50년을 다듬은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치열한 장인정신의 결정판"이라고 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관객의 수, 작품의 질 사이에 어떻게 현실적인 균형을 이뤄야 할까요.

"대중성과 예술성 다 중요하죠. 관객의 수보다는 연극을 더 생각해야 해요. 관객에게만 맞출 순 없잖아요. 좋은 연극은 관객의 삶에 보탬이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가는 데 뭔가 울림을 주는 연극."

―'연극을 하기 너무 힘들다'는 후배들에게 지혜를 들려주신다면.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문화생활부터 줄입니다. 연극 관람이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니까. 요즘 후배들 많이 힘들 거예요.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숨이 막히는 거 아닌가 해요. 훈련된 관객이 있어야 진지한 연극, 잘 만든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고요. 초등학교에서 학예회가 없어진 것도 큰 손실입니다. 제도적 지원과 방향 설정이 중요하고 연극인은 정신 무장을 더 해야지요."

―돌아보면 행복한 연출가였습니까.

"글쎄요. 저는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처럼 베케트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지난 50년 동안 '고도를 기다리며'를 사랑한 관객, 출연한 배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뿐만 아니라 관객과 배우에게도 50주년이 된 거예요. 그동안 같이 고도를 기다려줬으니까. 감사한 일이지요.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지만 '산울림 연극은 믿고 본다'는 관객을 실망시키진 말아야죠."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포조와 럭키가 다 분신(分身) 같다'고 하셨지요. 배우들은 '포조는 임영웅 선생님이 실연해 보일 때 가장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대사가 있나요?

"전에는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하잖아'였어요. 지금 다시 꼽자면 에스트라공이 '이 지랄은 더는 못 하겠다' 하는데 블라디미르가 '다들 하는 소리지'라고 받아요."

여느 인생과 닮았다. 삶은 '이 지랄은 더는 못 하겠다'고 도망치는 나와 '다들 하는 소리지'라고 다독이는 나의 끊임없는 투쟁이니까.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은 4년 만이다. 그 기간 동안 아팠다는 뜻이다. 고도는 오지 않고 알츠하이머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고 말았다.

그를 좋아하는 연극인이 모두 모인 개막식에서 연출가는 비스듬히 휠체어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자리였지만 기억과 망각 사이에 있는 임영웅은 소슬해 보였다. 언젠가 '고도를 기다리며'에 바람 소리(음향 효과)를 넣으면 고독감이 더 커지지 않겠느냐고 배우가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임영웅은 말했다. "너희가 연기를 잘하면 관객은 저절로 바람 소리를 듣는다"고. 그가 기다린 고도는 아마도 그런 연극 아니었을까.
조선일보 B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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