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中 화웨이의 '一雲一湖'

김정훈 국제부 차장
입력 2019.05.08 03:12
김정훈 국제부 차장
인도양에 있는 제주도보다 약간 큰 섬 모리셔스는 뜨는 신혼여행지다. 하도 예뻐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신(神)이 모리셔스를 먼저 만들고, 모리셔스를 본떠 천국을 만들었다'며 허풍을 떨었을 정도다. 요즘은 섬 인구 127만명보다 많은 130만명이 모리셔스를 찾고, 아프리카 국가로는 드물게 1인당 GDP가 1만달러 넘는다.

관광객이 늘어 좋은데 부작용도 만만찮다. 범죄가 해마다 10%씩 늘고 있다. 이에 반해 치안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화기 4대로 섬 안의 모든 신고를 받아 경찰을 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중국이 이 틈을 파고들었다. 모리셔스 통신망에 장비를 대 왔던 중국 기업 화웨이(華爲)가 모리셔스 치안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실무를 맡았다. 화웨이는 오는 7월까지 섬 전체에 안면인식 카메라 4000대를 깔 예정이다. 카메라 반경 200m 이내에 있는 얼굴을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기록은 중앙관제센터로 보내져 30일 동안 보관된다. 모리셔스 야당에선 이 시스템이 정치인 사찰용으로 악용될 게 뻔하다며 반발하고 있지만, 안전한 섬을 만들자는 명분 앞에 목소리가 작다.

화웨이는 이런 시스템을 '일운일호(一雲一湖)'라고 부른다. 모리셔스 길거리에서 수집한 이미지, 영상, 소리 등을 하나의 클라우드(구름), 하나의 호수에 모아 관리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신실크로드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작명법이 판박이다. 일대일로는 전 세계 전략 거점에 중국 돈을 빌려주고 인프라를 깔게 한 뒤, 빚을 무기로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모리셔스의 일운일호 시스템도 중국 차관으로 깔리고 있고, 중국의 발언권을 키우고 있다.

리카이푸 전 구글차이나 사장은 양질의 데이터를 많이 보유한 국가가 인공지능(AI) 시대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멈칫거릴 때, 중국은 감시 영상과 모바일 결제 기록 등을 거리낌 없이 쌓고 있다. 앞으로 중국은 화웨이의 5G 기술을 사용해 사물인터넷이나 자율주행차 운행 기록도 빨아들일 것이다. 정보 격차가 벌어지면 자국민 정보를 중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중국의 기술을 받아 연명하는 국가들이 생겨날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국이 화웨이를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화웨이는 자신들이 절대 뒷문으로 정보를 빼가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화웨이에 접수당한 나라들이 결국 자국민 정보를 스스로 화웨이를 통해 중국에 갖다 바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영국도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총리 주재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격론을 벌인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선 화웨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중국 건드려 좋을 것 없으니 일단 묻어 두자는 '사드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


조선일보 A34면
춘천마라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