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뿌리뽑으라"던 육군대장, 남은건 김영란법...박찬주는 쓴웃음 지었다

오경묵 기자
입력 2019.04.26 17:26
공관병 갑질 의혹 죄 안 되니 별건으로 탈탈 털어
수사 때 760만원 혐의, 1심 184만원→2심 무죄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26일 항소심 선고공판 이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법원은 박 전 대장의 뇌물수수 혐의는 무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연합뉴스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했던 뇌물 부분은 무죄를 선고한다."(서울고법 형사6부 재판장 오석준 부장판사)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부터 출발해 뇌물수수 의혹을 받았던 박찬주(61·육사 37기) 전 대장이 26일 항소심에서 혐의를 벗었다. 이 혐의로 현역 대장을 영창에 구속까지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건은 결국 옷을 벗기기 위한 '망신주기' 수사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졌다. 1년9개월만에 뇌물 혐의를 벗은 박 전 대장은 법정을 나오며 말없이 쓴 웃음만 지었다.

박 전 대장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7년 7월 31일로 촉발됐다. 군인권센터가 현역 제2작전사령관인 박 전 대장 부부의 갑질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공관병을 부당하게 부려먹고 괴롭혔다는 것이다. 국방부 군 검찰단은 같은해 8월 4일 박 전 대장을 형사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박 전 대장은 국방부에 전역지원서를 냈지만 국방부는 '육군인사사령부 정책연수' 발령을 냈다. 법령에도 없는 임시 보직이었다.

대통령도 거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뒤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군내 갑질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일부 문제 인사를 징계하는 수준의 미봉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군 안팎에서는 대통령이 엄정 수사를 지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박 전 대장에 대한 수사는 의혹의 본류였던 공관병 갑질 의혹이 아닌 별건(別件)으로 뻗어나갔다. 박 전 대장은 같은해 9월 21일 구속됐는데, 뇌물수수 혐의였다. 군 검찰은 박 전 대장이 특정 민간 업체가 사업을 따내도록 편의를 봐주고 대가를 챙겼다고 봤다. 박 전 대장은 같은해 10월 10일 뇌물과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박 전 대장을 구속기소했다. 고철업자 곽모씨에게 2014년부터 숙박비·식사비·항공료 명목으로 20차례에 걸쳐 760만원 상당의 향응·접대를 받은 혐의다. 이 업자에게 2억2000여만원을 빌려주고 통상적 수준을 넘어선 이자를 받기로 했다는 혐의도 포함됐다. 또 제2작전사령관 재직 시절 부하 중령의 보직 청탁을 들어준 혐의도 공소 사실에 포함됐다. 수사의 단초가 됐던 직권남용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1심 재판에만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박 전 대장 측이 "군사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재정신청을 내면서 재판이 지연됐다. 대법원은 같은해 12월 박 전 대장이 제2작전사령관 보직에서 물러난 직후 전역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국방부 헌병대대 지하 영창에 수감돼 있던 박 전 대장은 대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수원구치소로 이감됐다가 한 달여 만인 지난해 1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박 전 대장은 1심 재판 과정에서 "국방부가 전역을 막으며 현역 신분의 대장을 포승줄에 묶어 대중 앞에 세운 것은 상징적 의미를 위해서였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수개월간 헌병대 지하 영창에 있으며 대한민국에 있는 것인지, 적국에 포로로 잡힌 것인지 혼란스러웠고, 극심한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1심 선고는 지난해 9월 14일에 내려졌다. 재판부는 공소사실 가운데 2016년 5~6월 숙박비·식사비 등 184만원만 유죄로 봤다. 박 전 대장에게 돈을 건넨 고철업자가 이 시기에 제2작전사령부 직할부대의 사업을 수주해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른 16건, 580여만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과다한 이자를 받기로 한 혐의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금전거래를 넘어서는 뇌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박 전 대장과 검찰 모두 항소했고, 6개월 동안 네 차례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오석준)는 26일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장이 받은 향응이 직무와 관련해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박 전 대장이 부하 중령으로부터 보직 청탁을 받고 들어준 혐의는 유죄로 인정돼 벌금 400만원이 선고됐다. 박 전 대장 측은 "병석에 있는 부모 때문에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근무하겠다는 부하의 고충을 처리해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단순한 고충처리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부정한 청탁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 점이 인정된다"고 했다.

무거운 혐의를 벗은 박 전 대장은 곧게 서서 선고 직후 재판부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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