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한 김태우는 기소… 조국 등 靑민정라인 3명은 무혐의

윤주헌 기자 김정환 기자
입력 2019.04.26 03:03

검찰, 블랙리스트 관련 김은경 前장관·신미숙 前비서관만 기소
靑비서관 혼자 결정할 사안 아닌데, 조현옥 수석은 소환도 안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25일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교체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등으로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로 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이다. 하지만 청와대 업무 성격상 비서관이 한 일을 수석비서관이 모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검찰은 신 전 비서관 상관인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봐주기 수사' '꼬리 자르기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15명에게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 사이에 사표 제출을 요구해 그중 13명으로부터 사표를 받아낸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이들이 환경부 산하 6개 공공 기관의 17개 공모직 채용 과정에서 청와대나 장관이 추천한 후보자에게만 면접 자료를 제공하는 등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특히 이들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공단 상임감사 김모씨가 사표 제출 요구에 불응하자 표적 감사를 벌여 지난해 3월 물러나게 한 뒤 한겨레신문 기획조정본부장을 지낸 박영소씨를 후임자로 임명하려 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박씨가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면접에서 심사 대상자 전원을 불합격 처리한 뒤 재차 공고를 내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출신인 유모씨를 올 1월 상임감사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탈락한 박씨는 환경부 산하기관이 출자한 업체 대표로 임명됐다.

검찰은 신 전 비서관과 김 전 장관이 이런 일을 공모(共謀)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이런 내용으로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러자 신 전 비서관에겐 구속영장도 청구하지 않고 바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공모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에 대해서만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환경부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을 강제로 내보내려고 만든 문건들이 '장관 전용 폴더'에 저장된 사실도 확인했다. 정부 업무 처리의 경우 보통 비서관은 부처 차관과, 장관은 수석과 업무 내용을 조율한다. 또 이런 일들을 비서관이 수석에게 보고하지 않고 혼자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조현옥 인사수석은 조사하지도 않았다. "윗선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신 전 비서관 말만 믿고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다. 검찰 내부에선 "청와대 눈치를 봤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김 전 수사관이 관련 의혹을 폭로하자 그를 "미꾸라지"라고 지칭하며 "문재인 정부엔 사찰 유전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다 청와대 개입 의혹이 조금씩 드러나자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는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법원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수사팀은 "봐주기 수사는 없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이런 '가이드라인'을 넘지 못했다.

이런 기류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포함해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폭로한 김 전 수사관에 대한 수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의혹과 관련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임종석 전 비서실장,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이날 이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다. 민간인 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이들이 김 전 수사관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청와대가 김 전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선 혐의가 인정된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언론 등에 청와대에 보고된 첩보를 공개한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전 수사관이 언론에 공개한 첩보가 청와대의 공식 문건에 해당하는지와 상관없이 그 내용이 '보호할 만한 비밀'에 해당하고 이전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무상 비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윗선은 다 면죄부를 주고, 정작 관련 의혹을 폭로한 김 전 수사관은 기소한 것이다.

김 전 수사관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법의 날에 법치가 사망했다. 이제 청와대 비위를 제보하려면 해임과 형사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도 "청와대 눈치를 본 검찰이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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