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다' '알훔다움'… 동갑내기 두 시인의 과감한 실험詩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9.04.26 03:03

실험시의 代母 김혜순 시인, 새 시집서 진부한 관용어 대신 신조어 '새하다'로 참신함 더해
등단 33년 맞은 송재학 시인, '풀 끗혜' '셔로' '눈빗' 등 옛 언어로 표현의 질감 되살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기록한 김혜순(64·위 사진) 시인의 13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과 등단 33주년을 맞은 송재학(64·아래 사진) 시인의 10번째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이 최근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란히 나왔다. 두 시인은 1980년대 이후 참신한 언어 실험으로 주요 문학상을 두루 받아왔다.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에도 신세대 시인 못지않게 과감한 전위(前衛) 시집을 저마다 냈다.

실험시(詩)의 대모(代母)로 꼽히는 김혜순은 새 시집 곳곳에서 '새하다'는 신조어를 되풀이했다. 시인은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이라며 시집 도입부를 꾸몄다. '새하다'는 '새가 되다' 또는 '새처럼 날다'라든지 '새를 울게 하다'처럼 다양한 뜻으로 읽힌다. '영혼의 비상(飛上)'처럼 진부한 관용어를 대체하기 위해서 시인이 일부러 만든 듯하다. 이상(李箱)의 시어 '오감도(烏瞰圖)'가 조감도(鳥瞰圖)에서 파생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시집 뒤표지에 "이번엔 시가 나를 '새하게' 했다. 그런 다음 나를 날지 못하게 하고, 날개를 꺾었다"고 밝혔다. 시인은 시 '새의 시집'을 통해 '시방 새의 시집엔 시간의 발자국이 쓴 낙서'라며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연필을 들고/ 가느다란 새의 발이 남기는 낙서/ 혹은 낙서 속에서 유서'라고 했다. 시는 가벼운 낙서와 무거운 유서가 뒤섞인 글이란 것. 그런데 '이 시집은 새가 나에게 속한 줄 알았더니/ 내가 새에게 속한 것을 알게 되는 순서/ 그 순서의 뒤늦은 기록'이라고 털어놓았다. 시인이 곧 시의 주인은 아니다. 시인은 새의 발 같은 펜으로 새의 노래를 받아쓴다.

대구에서 치과 의사로 활동하는 송재학 시인의 새 시집도 시의 자생성(自生性)을 보여준다. '수국(水菊)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움직이는 흑백사진'이라고 전개되는 시 '취산화서(聚散花序)는 마침표 없는 문장을 이어가면서 한 편의 시가 '시인과 사물/ 주체와 객체' 이분법을 해체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1915~1926년 조선에서 성행한 딱지본 대중소설의 언어를 차용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풀 끗혜 이슬 생기듯'이라거나 '눈물의 알훔다움' '셔로 안앗다 자철로 달라붓는 눈빗' 등등 옛 표기에 담긴 감정 표현의 질감을 오늘에 되살린다.

시인의 언어 실험은 글자 모양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시 '참척(慘慽), 4월의 글자'를 낳기도 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다는 이 글자는 자디잔 가시로 가득하다'로 시작한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가시들이 눈물샘에 떠밀려 와서 비로소 참척이라는 뼈의 글꼴이 갖추어진다'라고 할 뿐이다. '慘慽'의 각 획이 가시가 되어 독자의 가슴에 말없이 박힌다.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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