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광화문

김경은 기자
입력 2019.04.26 03:03

[금호아트홀]
19년 동안 조성진·김선욱·손열음 키워낸 '실내악의 聖地'

25일 밤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 마지막 '아름다운 목요일' 무대를 채운 주인공은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였다. 비올리스트 이한나(34), 첼리스트 김민지(40), 피아니스트 김다솔(30),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31)·이재형(30)은 광화문을 떠나는 금호아트홀을 추억하며 '메모리스 인 광화문' 콘서트를 선보였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2000년 12월 개관 이후 매주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공연을 열어 온 금호아트홀. 김선욱, 손열음, 조성진, 선우예권 등 숱한 영재들을 길러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대한민국 실내악의 성지(聖地) '금호아트홀'이 이달 30일 바이올리니스트 김진승의 독주회를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금호아트홀이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옆 대우건설빌딩(옛 금호빌딩) 3층에 문을 연 때는 2000년 12월.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20억원을 들여 390석 규모로 만들었다. 당시 개막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이 했다.

박 명예회장은 소문난 클래식 애호가였다. 1977년 지금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만들고 금호영재콘서트, 금호음악인상, 악기은행 등을 만들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선희(44)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는 "명예회장님은 공연 때마다 J열 18번 좌석에 앉아 음악가들 연주에 귀 기울이셨다"며 "'이런 공연장 하나 더 만들기도 힘든데 그나마 있던 것도 없어지다니!' 하며 안타까워하는 분들을 만날 때면 자의로 어찌할 수 없는 교통사고를 당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위부터) 2006년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1주기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는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2005년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김선욱. 지난해 11월 금호아트홀에서 연주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자리해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한 금호아트홀은 매주 다섯 차례 이상 독주 및 실내악 무대를 펼쳤다. '1년 365일 음악이 멈추지 않는 클래식의 전당'답게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신예와 거장을 동시에 아우르는 기획 공연을 선보였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가격(평균 5만원)으로 '알뜰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홀 완공 전인 1997년 시작한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는 첼리스트 정명화·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백혜선 등 국내 대표 연주자들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스위스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슬로베니아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오짐, 러시아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 등 해외 명(名)연주자들을 소개한 장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31)은 2003년 열다섯 풋풋한 소년의 얼굴로 금호영재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형편상 피아노를 포기할까 고민하던 손열음(33)에게 금호영재콘서트는 '구원'이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5)은 열한 살 때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2011년 최연소 연주자로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에 섰다. 김남윤(70)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에게 금호아트홀은 숱한 바이올린 제자들이 첫 박수를 받은 공간. 객석 맨 뒷줄에 홀로 앉아 조용히 연주를 듣는 정경화(71)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금호아트홀은 퇴근 후 가볍게 걸어가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는 곳이었다. 은행원 김소정(38)씨는 "약속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금호아트홀에 갔다. 믿고 듣는 '프로의 맛'을 볼 수 있었는데…"라고 했다. 영상의학과 전문의 윤상욱(51)씨는 "어느 자리에 앉든 나무랄 데 없는 음향, 아늑한 분위기가 마치 우리 집 거실 같았다"고 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심리학과 교수인 정안숙(43)씨는 "번잡한 광화문에서 조그맣고 조용한 금호아트홀은 기도실에서 나만의 클래식을 독대하는 느낌. 이젠 추억으로 남겨야 한다니 슬프다"고 했다.

다음 달 2일부터 금호아트홀은 연세대 신촌캠퍼스 내 '금호아트홀 연세'(390석)로 자리를 옮긴다. 'Da capo 처음부터, 새롭게'라는 부제로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첫 '아름다운 목요일' 무대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0)가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35)와 함께 채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신촌에서의 힘찬 출발에 많은 응원을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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