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천안함 주범' 김영철 경질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9.04.26 03:06
1990년쯤 김일성이 내선으로 남북 협상 내용을 듣다가 북 대표가 남측을 몰아세우자 박수를 쳤다. 집무실로 불러 '대적(對敵) 투쟁'을 칭찬하며 이름을 물었다. "본명은 김동수인데 대남용 가명이 김영철"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김영철'이란 이름이 더 좋으니 본명으로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남 총책 '김영철'은 김일성이 내려준 이름인 셈이다.

▶김영철의 부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김일성을 돕다 사망한 사람의 유자녀만 입학한다는 '만경대 학원' 출신이라는 점이 그의 성분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그런 배경 덕을 봤는지 16세이던 1962년 출세 코스인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서 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부터 북 회담 대표로 나왔는데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회담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당신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발탁한 군 지도부를 줄줄이 숙청하면서도 김영철만큼은 계속 중용했다. 정찰총국장이던 김영철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주도한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천안함 공격은 내부적으로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굳히는 데 활용됐다. 그는 2016년 군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기용됐다.

▶김영철이 남한에 밝은 것은 맞지만 북핵이나 대미 협상은 다뤄본 적이 없다. 문외한에 가깝다. 북 체제 특성상 담당이 아닌 분야의 정보는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접근하기 어렵다. 알려고 하면 간첩으로 몰린다. 그런데도 김영철이 김정은의 북핵 특사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난 것은 최근 한반도 국면이 서훈 국정원장·김영철 통전부장·폼페이오 CIA 국장 등 이른바 '스파이 라인'의 물밑 접촉으로 굴러갔기 때문이다.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은 이 라인의 실패를 의미한다.

▶통전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교체됐다고 국정원이 그제 국회에 보고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문책성 인사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정점을 찍었던 '57년 대남 공작' 인생이 북핵 늪에 빠져 침몰하는 모양새다. 김영철에 앞서 통전부장을 맡았던 김용순과 김양건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모두 김씨 일가의 최측근으로 온갖 충성을 다 했지만 끝이 좋지 않다. 신(神) 같은 권력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 타버린 것일까, 숱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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