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8] 조선을 구한 明의 화약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19.04.26 03:03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임진왜란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최초의 본격 화기전(火器戰)이었다. 개전 초기 일본의 '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조선은 종국에는 '포'로 외침(外侵)을 견뎌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것도 적을 능가하는 조선 수군의 함포 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기전은 화약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화약 없는 화기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한반도에 화약 제조 기술이 도입된 14세기 말 이후 조선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화약 기술 보유국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있다 하여 뜻대로 화약을 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약 제조를 위해서는 '초석(硝石)'이 필수이다. 염초(焰硝)라 불리던 초석은 복잡한 화학 공정을 거쳐야만 생산할 수 있다. 조선은 제조 기술은 있었지만, 전국을 뒤져도 연간 수천 근 정도의 염초밖에 확보할 수 없었다. 화약은 희소 첨단 전략물자로 특별 관리되었고, 명(明)은 최우방국 조선에도 화약을 넘기지 않았다.

조선은 전란 발발 당시 군기시(軍器寺)에 2만7000근의 화약을 비축하고 있었으나, 국왕의 몽진으로 도성(都城)이 비자 폭도의 방화로 모두 소실되고 만다. 수년을 공들인 전략물자가 덧없이 사라진 것이다. 일본군의 파죽지세 공세에 위기감을 느낀 명은 비로소 화약을 조선에 원조하기 시작한다. 명군 파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병부상서 석성(石星)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도 조선에 각궁(角弓)과 화약을 보내는 것이었다.

명군이 임진왜란 승리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명군이 올린 전과(戰果)가 무엇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명이 원조한 화약이 없었다면 조선군의 화기 전력 자체가 반쪽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물자 확보를 위한 자체 역량과 위기 때 의지할 수 있는 우방의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안보의 기초이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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