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의회주의자 문희상' 유감

김경필 정치부 기자
입력 2019.04.26 03:04
김경필 정치부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자타가 일컬어 온 '의회주의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문 의장은 "모든 나랏일은 국회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여야의 국회 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를 스스로 강조하고 실천해왔다.

문 의장은 작년 7월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으로 선출됐을 때도 여야 의원들 앞에서 "대화와 타협, 협치를 통한 국정 운영은 20대 국회의 태생적 숙명"이라고 했다. 국민이 선거에서 다당제를 선택했으니 "집주인인 국민이 만든 설계도에 따라 일꾼인 국회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여당엔 "정권 2년 차에도 야당 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야당에는 "요구할 건 요구하되 내줄 것은 내주라"고 했다. 그는 여야 대치로 국회가 헛돌 때마다 각 당 대표나 원내대표들과 식사 자리를 갖고 "싸우더라도 국회에서 싸우자"고 했다.

그러나 요즘 문 의장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평소 공언해 온 '의회주의자'가 맞는지 갸웃거리게 한다. 여당이 '게임의 룰'인 선거제를 제1 야당의 동의 없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하겠다고 나섰지만, 문 의장은 이를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패스트트랙에 반대하는 의원을 강제로 사임시키려 한 것도 병원에서 결재했다. 국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컸지만, 문 의장은 '관례'를 앞세워 허가했다. 국회법은 임시국회 사·보임을 금지하고 있고, 의원 스스로 부득이한 사유로 신청할 때만 허용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사·보임 신청서를 팩스로 보내는 꼼수를 썼지만 순순히 받아들였다.

같은 민주당 출신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 대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2월 정 의장은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로부터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특검을 연장하는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러나 정 의장은 "일방 처리는 반(反)헌법적 작태"라며 "교섭 단체 간 합의가 없으면 직권상정을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한국당이 지도부를 따르지 않는 김현아 의원을 소속 상임위에서 강제로 사임시키려 했다. 이번 사·보임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 의장은 "국회의원의 양심을 지켜주는 것이 민주주의"라며 거부했다.

문 의장은 패스트트랙 추진에 항의하는 임이자 의원의 얼굴을 만진 것으로 '성추행' 논란에까지 휘말려 있다. 성추행 의사가 없었다 하더라도 병원으로 가기 전 사과부터 하는 게 평소 그다운 행동이 아니었을까. 문 의장은 작년 9월 김성태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스피커를 자처하고 있다"고 비난했을 때 "국회의장을 모욕하면 국회가 모욕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했다. 이런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문 의장 스스로 성숙한 '의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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