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트럼프 만나기 전 '뮬러 리포트' 읽어보라

입력 2019.04.26 03:05

적나라한 '뮬러 리포트' 보면 부적절한 트럼프 지시에 반기 드는 참모 의외로 많아
'톱 다운' 방식에 목매면 안 돼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워싱턴 시내의 작은 동네 서점에서도 트럼프 대선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조사한 '뮬러 특검 보고서'를 쌓아놓고 판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이미 예약 주문만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하는 데 최고의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을 폭로해 밀러언셀러가 된 마이클 울프 기자의 책 '화염과 분노'보다 더 적나라하고,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도 못 따라올 정도로 치밀하다.

뮬러 보고서를 보면, 트럼프는 자신의 대선 캠프와 러시아 내통 의혹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감'이 없었던 것 같다. 2017년 초 트럼프 행정부 첫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마이크 플린이 러시아 접촉 사실에 대해 거짓말했다는 걸 인정하고 사임했다. 트럼프는 그때 플린을 '제거'했으니 러시아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마치 구두 밑바닥에 붙은 껌처럼 이 문제를 결코 쉽게 제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트럼프는 러시아 내통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했다. 보고서를 보면 그 노력이 어찌나 집요했는지 트럼프가 실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트럼프는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등 여러 참모에게 자신이 러시아 의혹과 무관함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 요구를 외면했다.

뮬러 보고서의 백미는 트럼프 참모들의 '저항사'이다. '예측 불허'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혼자 마음대로 다 하는 것 같은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참모들이 부적절한 지시에 태업과 거부로 맞선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트럼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는 없었다.

도널드 맥갠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은 트럼프의 특검 해임 시도를 막았다. 트럼프가 그에게 로즌스타인 법무차관에게 뮬러 특검 해임 지시를 전달하라고 했지만 거부했다.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장관은 과거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점을 고려해 스스로 수사 지휘권을 포기했다. 트럼프는 분기탱천해 다시 수사 지휘를 해서 자기를 보호하라고 요구했지만 세션스는 버텼다. 두 사람 다 사표를 냈고 결국 물러났다. 이 외에도 캐서린 맥팔런드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로즌스타인 법무차관 등 여러 명이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지구상 거의 모든 정부가 그 나름대로 대응 방식을 찾아내느라 고심했다. 효과가 입증된 방법 중 하나가 감언이설로 '트럼프 구워삶기'였다. "차기 노벨 평화상 후보"라고 치켜세우고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큰일을 할 것"이라고 칭찬하면 원하는 쪽으로 트럼프가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이 보여주듯 그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은 요즘 트럼프의 정상회담 독대 시간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때처럼 확대 정상회담 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구워삶기 작전'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참모들의 고육지책이다. .

우리 정부는 여전히 미국 관계에선 '트럼프 치켜세우기', 북핵 문제에서는 '톱 다운' 방식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오로지 트럼프만 설득하면 된다'는 건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걸 뮬러 리포트가 증언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해야 한다면 뮬러 리포트를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대통령이 원한다고 다 따를 수는 없다면서 반기를 드는 참모가 의외로 많다는 데 놀랄 것이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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