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군무, 왕자의 키스… 익숙한 장면에도 터지는 탄성

양승주 기자
입력 2019.04.25 03:00

잠자는 숲속의 미녀

봄을 들어다 무대 위에 펼쳐놓은 듯했다. 24일 개막한 국립발레단의 클래식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안무 마르시아 하이데). 꽃이 만발한 무대, 온몸으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요정들, 달콤한 사랑 이야기까지…. 인파에 치일 꽃 구경이 내키지 않는다면 이 공연을 대신 찾아도 좋을 것이다. 오는 6월 '지젤'을 끝으로 은퇴할 뜻을 밝힌 국립발레단 간판 무용수 김지영(41)을 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무대이기도 하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여섯 요정의 축하연 장면.이미지 크게보기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여섯 요정의 축하연 장면. 요정들의 개성 있는 독무와 화려한 군무를 모두 볼 수 있어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국립발레단
지난 23일 프레스 시연으로 먼저 만난 무대는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례식으로 열렸다.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갯빛 의상을 입은 여섯 요정의 깜찍한 축하연으로 흥겹던 분위기는 마녀 카라보스의 등장으로 얼어붙는다.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난 그는 공주에게 16년 뒤 죽게 될 것이란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리고, 요정들의 헌신적인 보호에도 공주는 열여섯 살 생일파티에서 물레바늘에 찔려 쓰러진다. 공주를 지키던 라일락 요정은 공주의 죽음을 막기 위해 궁 안의 모든 사람을 100년간 잠재우고, 햇살과 꽃이 가득하던 왕궁은 깊은 어둠에 휩싸인다. 이 모든 것을 구원하는 건 진실한 사랑을 담은 왕자의 키스. 익숙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흐뭇한 이야기다.

김지영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섬세한 테크닉으로 열여섯 살 공주 오로라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그에게 청혼하러 온 네 명의 왕자와 한 명씩 손을 잡고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를 뒤로 높게 들어 올리는 동작)를 반복하는 1막의 '로즈 아다지오' 장면에선 살짝 불안정한 모습도 보였지만 뒤로 갈수록 안정됐다. 3막 데지레 왕자와의 결혼식 장면에서 선보이는 그랑 파드되(2인무)에선 고난도 동작을 깔끔하게 완성할 때마다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카라보스 역의 이재우는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2017년 이 역할로 세계 무용계 최고 권위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후보에 올랐던 그는 큼지막한 이목구비를 활용한 풍부한 표정 연기와 화려한 테크닉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라푼젤과 왕자, 미녀와 야수, 알라딘과 세헤라자데 등 동화 속 주인공들이 총출동하는 3막의 디베르티스망(볼거리로 제공되는 춤) 장면에선 젊은 단원들의 탄탄한 기량을 엿볼 수 있다.

극의 마지막,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왕자와 공주 곁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카라보스는 관객들을 향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진다. 마치 봄도, 사랑도 영원한 건 없다는 듯. 하지만 그의 등에 대고 이렇게 외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찬란한 봄을, 이 아름다운 춤을 더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24~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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