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렸습니다, 40년 지나도 그리워서

정상혁 기자
입력 2019.04.25 03:00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展

너무 아플 때 어김없이 어머니가 계신다. 늙어 한쪽 눈이 거의 감긴 채, 그러나 두 손을 매만지며 환영처럼 서 계시는 것이다. 변월룡(1916~1990)이 어머니의 초상을 그린 건 생전의 어머니 나이가 다 돼서였다.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5년 뒤 숨졌다.

변월룡의 유화 '어머니'(119.5×72㎝). /학고재
러시아 한인(韓人) 화가 변월룡의 유화·판화·데생 등 189점이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5월 19일까지 선보인다. 상업 화랑 첫 전시다. 평생 고국을 그렸으나 끝내 시름하다 잊힌 이 화가의 눈부신 인물화, 사표로 삼은 렘브란트를 능가한다고 평가받는 동판화 등이 연대기 순으로 대거 자리했으나, 전시를 기획한 문영대 미술평론가와 우찬규 학고재 대표가 이구동성으로 꼽은 '단 하나의 그림'은 1985년작 유화 '어머니'였다.

1945년 돌아가신 백발의 어머니는 흰 저고리에 치마 차림이다. 흘러내린 치마는 짙은 갈색이어서 거의 뿌리처럼 보인다. 그림을 단순 인물화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은 어머니 뒤에 놓인 흙색의 장독. 땅에 묻어뒀다가 그리울 때 꺼내보곤 하는 말 없음의 물상이 가만히 한국말을 건네고 있다. 굽은 어머니와 항아리, 두 곡선의 정서가 그림에 서사를 불어넣는다. 문 평론가는 "러시아 말도 모른 채 홀로 가족을 건사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레핀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이후 정교수가 된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였지만 북한에 파견돼 1년간 북한 미술의 기틀을 세웠음에도 귀화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숙청돼 북한에서 그 존재가 지워졌다. 남한에서도 제대로 된 조명이 없었으나 2016년 탄생 100주년 회고전(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서서히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평생 지켰고, 자신의 비석에도 한글로 이름을 새겨넣게 한 그는 '어머니' 그림 맨 밑 오른쪽 귀퉁이에 한글로 '어머니'라고 적었다. 어머니를 고국으로 바꿔 읽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A22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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