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떡처럼 지은 집, 난 여기서 실험동물처럼 삽니다

채민기 기자
입력 2019.04.25 03:00

[크리에이터의 공간] [1] 건축가 황두진
1층은 직장, 2층은 집, 지하엔 강당… 한 건물에 여러 기능 갖춘 '목련원'
직장·주거 가까운 직주근접 철학 "실험장 삼아 직접 체험하는 중"

"저 자신을 모르모트(실험용 쥐) 삼아 이 집에서 실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셈이죠."

지난 19일 오전 건축가 황두진(56)이 서울 통의동 '목련원'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근처 프로젝트 현장을 살펴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경복궁 옆 동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목련원은 그의 자택이자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사옥이다. 마당의 목련을 당호(堂號)로 삼았다.

목련원은 구관(사진 왼쪽)과 신관이 2층의 다리로 연결된 형태다.이미지 크게보기
목련원은 구관(사진 왼쪽)과 신관이 2층의 다리로 연결된 형태다. 획일적인 공간이 되지 않도록 마당을 둘러싼 작은 마을처럼 구성했다. 연못의 잉어들도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다. /김지호 기자
'모르모트'라는 말은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목련원에 구현하고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의미다. 황두진은 이상적인 도시의 조건으로 직주근접(職住近接)을 강조해왔다. 일터와 집이 가까워야 좋다는 건 상식이지만 현실에선 많은 직장인이 장거리 출퇴근에 시달린다. 교통량과 에너지 소비가 늘고 개인의 생활은 고단해진다. 황두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시의 무리한 수평적 팽창에서 오는 부담을 시민들이 각자의 삶으로 이겨내는 상황"이다.

그러니 많은 이가 직주근접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적 여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울 정릉에서 관악(서울대)까지 통학했던 대학 시절 이래로 장거리 통학·통근에 질려버린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된 생각이기도 하다.

창 밖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보이는 자택 주방. 쾌적한 환경을 위해 설계실과 분리해 지하에 따로 마련한 모형 제작실. 서재에 놓인 안락의자는 황두진이 디자인한 것이다. (위부터) /황두진건축사사무소·사진가 박영채
설계사무소를 개업하고 서울 서초동에서 사무실을 임차해 쓰다가 2002년 목련원으로 옮겨왔다. 효율성을 위해 이사했지만, 처음엔 일과 삶의 구분이 모호했다. 시간에 매듭을 짓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씩 돌며 일부러 출퇴근길을 만들었다. 마음 놓고 밤샘을 거듭하다 건강을 해친 적도 있다. 균형점을 찾은 지금은 덤처럼 주어지는 시간을 여유로 받아들이게 됐다. 일의 능률도 높아졌다. "남들보다 매일 두 시간이 더 있는 거잖아요. 처음엔 직업인으로서 '전투력'이 약해질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이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직주근접의 도시를 위해 황두진이 제시한 건축적 해법이 '무지개떡 건축'이다. 적어도 5층, 용적률 250% 내외 건물 안에 주거를 포함한 여러 기능이 층마다 색이 다른 무지개떡처럼 섞여 있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그는 "이런 건물이 모여 있으면 그 지역 안에서 주거와 직장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도시는 일하는 곳에서 일만 하고 잠자는 곳에서는 잠만 자도록 설계돼 있다. 외곽의 아파트촌과 도심 업무지구 사이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당연시한다. 한국은 국토가 좁아 아파트라는 밀집 주거가 불가피하다는 통념이 있지만 황두진은 여기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아파트 단지는 동 간격이 넓어서 용적률이 200%도 안 되는 곳이 많습니다. 원래 전원(田園)에 맞는 유형이에요." 도시에는 규모는 작아도 밀도가 높은 무지개떡 건물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목련원은 무지개떡의 개념에도 부합한다. 원래 있던 2층 주택(구관) 옆에 3층 신관을 증축했다. 구관 1층은 황두진건축사사무소, 2층이 자택이다. 신관 1·3층엔 다른 회사 사무실이 입주했고 2층엔 황두진의 서재 겸 응접실이 있다. 양쪽의 2층을 잇는 다리는 황두진의 사무실이다. 지하에는 강연장·회의실·자료실을 겸한 '목련홀'과 모형 제작실이 있다. 황두진은 "마당을 중앙 광장으로 하는 마을 같은 공간"이라며 "각자가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율성을 가지고 일하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목련원은 또한 서촌 일대의 문화적 거점이다. 2002년 가을부터 건축·문학·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영추포럼'을 열고 있다. 경복궁 영추문에서 이름을 따온 이 강연은 17년 동안 90회를 넘겼다. 황두진을 포함한 남자 4명이 소장품을 판매하는 '네넘시장'을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의 무대로 개방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 벽돌 빌딩 '원앤원 63.5',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관 등을 설계한 황두진은 이런 의미에선 '동네 건축가'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A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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