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로봇이 살려낸 노트르담

손진석 파리특파원
입력 2019.04.25 03:14
손진석 파리특파원
파리 시내 화재 진압을 책임지는 파리소방대를 말하는 약자는 BSPP다. S가 공병(Sapeurs·工兵)을 뜻한다. 이런 이름을 갖고 있는 건 연유가 있다. 1810년 파리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관의 대형 화재로 수십 명이 사망하자 놀란 나폴레옹이 군(軍) 공병부대를 주축으로 소방대를 출범시킨 유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공병으로 출발한 전통을 갖고 있는 파리소방대는 불 끄는 최신 장비 도입에 관심이 크다. 보유 중인 첨단 소방 장비의 기능이며 제원을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지난주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서 파리소방대는 '기술 소방'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콜로서스'라는 화재 진압용 로봇이 활활 타는 성당에 들어가 분당 2500L의 물을 뿌리는 전동식 물대포를 불길 한가운데에 조준했다. 유럽 언론은 콜로서스의 맹활약에 찬사를 보냈다.

기자는 콜로서스를 개발한 샤크로보틱스라는 회사의 창업자 시릴 카바라씨와 전화 통화를 했다. 카바라씨는 상기된 목소리로 "콜로서스가 노트르담을 살린 영웅으로 떠올라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9년을 복무하고 2016년 엔지니어들과 의기투합해 샤크로보틱스를 설립했다.

인상적인 건 파리소방대의 자세다. 샤크로보틱스는 직원 15명으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게다가 파리에서 400㎞ 떨어진 서부 항구 도시 라로셸에서 창업했다. 그래도 파리소방대는 '시골 초짜 기업'을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샤크로보틱스가 제안한 화재 진압용 로봇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개발 과정에 소방관들을 참여시켰다. 카바라씨는 "소방관들이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무기력하고 로봇이 대신 유용할 수 있는지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자세히 일러준 것이 콜로서스가 경쟁력을 갖게 된 원천"이라고 했다.

1년 넘는 개발 과정을 거쳐 2017년부터 현장에 배치된 콜로서스는 위력을 뽐내고 있다. 이번 노트르담 화재에서도 사방이 유리로 막혀 엄청난 온도로 달궈진 예배당 안에 콜로서스가 대량의 찬물을 뿌려 기온을 낮췄다. 덕분에 소방관들이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 지상에서 콜로서스가 동분서주하는 사이 공중에서는 고화질 HD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날아다녔다. 성당 내부 상황을 드론이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 화재 진압 작전을 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이 드론은 세계 최대 드론 제작사인 중국 DJI사 제품이다.

카바라씨는 "이제는 화재 현장에서 과거처럼 소방관들의 목숨을 건 분투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불길에 맞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노트르담 화재를 진압한 파리소방대는 로봇과 드론으로 상징되는 '테크 소방'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리 소방 당국도 이런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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