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홍남기 부총리가 해야만 하는 일

김영진 경제부장
입력 2019.04.25 03:15

무디스, 文 정부 재원 추궁
세수 2월부터 감소세인데 與圈은 선심 정책 남발
경제부총리, 나라 곳간 지켜야

김영진 경제부장
글로벌 신용 평가 기관인 무디스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최대 관심사는 새 정부의 복지 재원 대책이었다. 무디스는 178조원에 달하는 공약 재원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했다. 특히 집권 5년간 어떻게 세수(稅收)를 확보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이 때문에 세금 정책을 총괄하는 조세총괄국장이 답변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국제 금융 담당자가 바빴던 보통 때에 비하면 이례적이었다.

정부의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해 국가 신용 등급을 조정하는 곳이 바로 무디스, S&P, 피치 같은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이다. 무디스는 본업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일본보다 국가 신용도가 높은 유일한 이유는 튼튼한 재정 덕분이다. 북핵 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랐던 문재인 정부 초기, 국가 신용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북한 리스크를 빼곤 한국의 빚 갚을 능력이 우수하고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도 국세가 해마다 14조원, 25조원씩 예상보다 더 걷히면서, 무디스 같은 신용 평가사들은 기초연금, 아동수당 같은 조(兆) 단위 퍼주기 정책에도 대한민국 곳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턴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이 급격히 꺾이고, 부동산 경기도 찬바람이 불면서 세수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지난 2월엔 국세 수입이 작년보다 1조3000억원이나 덜 걷히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재원 대책도 없는 선심성 돈 풀기는 도를 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인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6조원 규모의 광역급행철도(GTX-B) 사업을 언급하며 "연말까지 예비타당성 조사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정부 심사에서 퇴짜 맞은 대규모 지역 사업을 부활시키겠노라고 예고한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조정실 산하에 생활SOC추진단이라는 20명 규모의 '미니 예산실'까지 신설했다. 그리곤 지자체 현안을 끌어모아 48조원짜리 전국구 사업을 발표했다. 둘 다,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월권(越權)해놓고, 곳간을 열라는 식이다. 특히 이낙연 총리는 "모든 경제를 경제부총리가 할 거라는 생각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더 이상 경제 콘트롤타워가 아닌 것이다.

지금 여당의 '아니면 말고'식 지역 사업 폭탄을 견제할 수단은 없다. 나랏돈이 필요한 정책을 만들 땐 반드시 재원 조달 방안을 세워야 하는 '페이고(Paygo)' 제도는 물론, 국가 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일정 수준을 못 넘게 강제하는 '채무 준칙'조차 없다. 가봉, 나이지리아에도 있는 재정 준칙(財政準則) 하나 제대로 없는 게 바로 대한민국이다. 남은 보루를 꼽으라면 나라 곳간을 지키는 기획재정부와 그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다.

이번에 홍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에 말을 바꿔 6조원대 추경을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어내면서 체면을 크게 구겼다. 한 달 사이에 경제지표 해석을 '개선'에서 '부진'으로 돌려놓고 추경을 편성한 첫 부총리가 아닐까 싶다. 3조원 넘는 빚(국채 발행)까지 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이상 밀리면, 하반기에 수조원대 추경 요구가 또다시 고개 들 테고, 내년엔 500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퍼 울트라 예산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후에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나. 복지 포퓰리즘을 방치해 나랏빚이 급증하거나 상환 능력을 의심받으면 국가 신용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도 순식간에 달러 보유량이 바닥났고, 나랏빚 갚을 능력이 제로가 된 사실을 확인한 저승사자들은 국가 신용 등급을 불과 한 달 새 6등급이나 뚝뚝 떨어뜨렸다. 환란(換亂)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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