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노인 혐오'가 기다리는 미래

홍준기 사회정책부 기자
입력 2019.04.24 03:12 수정 2019.04.24 09:28
홍준기 사회정책부 기자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연금을 타는 노인들을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한다. 노인들을 살해한 이들은 국민연금공단 연금이사 산하 기금합리화지원실 노령연금TF 소속. '94세 할머니가 122세 부친을 간호하며 사는' '지하철 10칸 중 8칸이 노인 전용인' '젊은이들이 80세 이상 노인의 투표권 박탈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는 지난해 발간한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가 그리는 미래 한국 모습이다. "요즘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을 부양하고 있어. 청년들이 100만원씩 벌면 너희 늙은이들에게 쪽쪽 빨려서 대략 50만원씩 가져간단 말이야." 소설 속 연금이사는 공단이 연금을 받는 노인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반면 최근 국민연금공단은 페이스북에 연금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반박하는 듯한 자료를 올렸다. 공단은 "1995년엔 국민연금이 2033년에, 2000년엔 2049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4차 재정 계산에선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기는 2057년일 것으로 예측됐다. 공단은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보험료 납부를 기피하게 돼 현재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연금액이 적은 분들이 후회하기도 한다"고 했다. '어차피 미래 상황은 계속 바뀌는 것이고, 기금 고갈 시점도 늦춰지기 마련'이라는 낙관론을 전하고 싶은 듯했다.

공단이 소개한 것처럼 매번 연금 기금 고갈 시점에 대한 예측도 바뀐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늘었고, 나중에 받는 연금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부가 연금 제도를 변경해왔기에 기금 고갈 시점은 과거 예측에 비해선 늦춰졌다. 반면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 외엔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출 방법이 사실상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저출산 현상이 이어져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이미 2017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연금 보험료를 내줄 사람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빠른 고령화 추세 속에 연금을 받을 사람만 는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상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연금 지급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다만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미래의 직장인들이 자기 소득의 20~40%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소설에서처럼 노인 복지를 위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가 소득의 절반 수준이 되는 시점도 다가올 수 있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아무런 대책 없이 "미래에 연금을 문제없이 받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소설 '당신의 노후' 속 끔찍한 '노인 혐오'가 정말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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