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60년을 한결같이 노래한다는 것

입력 2019.04.24 03:15

월남, 독일 탄광, 중동 등에서 울며 따라 부른 이미자 노래
60년간 똑같은 창법과 마음가짐… 이런 가수가 있다니 행운 아닌가

한현우 논설위원
1965년 월남에 파병된 대한민국 국군 앞에 선 스물네 살 이미자를 상상해 본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가수와 최악의 전쟁에 투입된 젊은 남자들의 만남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까지 여덟 마디 도입부에 이어, 노래는 듣는 이의 감정을 바로 끌어올린다.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20대 피 끓는 장정들은 이 노래가 임을 그리다 지쳐 동백꽃처럼 빨갛게 멍이 든 여자의 노래라는 사실을 잊는다. 그저 적도 타국에서 벌어진 남의 전장에 던져진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릴 뿐이다. 그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밤을 각자의 사연을 안고 아프게 울며 보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미자의 등장은 그만큼 극적이다. '동백 아가씨'는 서울의 대학생에게 버림받은 섬처녀의 비극을 그린 영화의 주제가였다. 당대 최고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나왔다. 고국에서는 남녀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놓고 눈물짓는 영화가 대히트를 쳤는데, 베트남 정글에서는 동년배 남자들이 오로지 국가가 불렀다는 이유로 총과 수류탄을 안고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냈다. 그들을 위로한 가수가 이미자였다. 이 노래는 여자가 부르기에도 워낙 고음이어서, 오히려 남자들이 한 옥타브 낮춰 따라 부르기 좋았다. 남의 나라 햇볕에 그을린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하고 제가끔의 그리움을 안고 악쓰며 따라 불렀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1959년 데뷔한 이미자 선생이 60주년 무대에 선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대한민국 탄생 이후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무대에 서 온 여가수의 인생과 노래들을 떠올렸다. 이미자의 노래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 말처럼 바이올린 같던 음색이 조금 탁해졌고 밀어붙이는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지키고 있는 라이브 원칙은 '음반 녹음할 때와 똑같이 부르는 것'이다. 낼모레 여든이 되는 가수가 "음반과 똑같이 부르겠다"고 한다.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어떤 가수도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무서운 자신감이다.

이미자 노래는 악보와 일치하지 않는다. 음을 놓았다가 당기고 밀었다가 잡아챈다. 그러나 그 테크닉이 요즘 트로트 가수들의 가볍게 출렁대는 창법과는 완전히 다르다. 장음(長音)을 낼 때 이미자의 바이브레이션은 인위적이지 않고 마치 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것이 이미자 노래 60년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노래는 조용히 부르는데도 두 번 들으면 벌써 시끄럽다. 이미자 노래는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아도 시끄럽지 않다. 이것이 그 노래의 생명력이다. 그 생명력은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일으켜 세운 대한민국 저력 중 하나였다. 베트남과 독일 탄광과 중동 건설 현장에서 그의 노래들은 대한민국 남자들의 핏줄 속에 흘렀다.

이미자는 1980년대 대중음악에 발라드가 등장하면서 무대 중앙에서 조금씩 비켜났다. 거의 동시에 대중음악에 없던 '트로트'란 장르가 나타났을 때, 이미자는 그에 영합하는 대신 자신의 노래 방식에 머무르기로 했다. 함부로 TV에 나가지 않았고 히트곡 내려고 아무한테나 곡을 받지도 않았다. 음반과 똑같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라이브 무대만큼은 매년 전국을 돌며 열어왔다. 그는 여전히 60년 전과 똑같은 창법으로 노래한다. 그때 피와 땀을 흘린 대가로 지금 대한민국의 어른이 된 세대에게 낯익은 위로를 준다. 60년을 한결같이, 똑같은 창법과 마음가짐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에게 이미자 선생 같은 가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행운이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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