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시급 1.2마라탕"…화폐 단위까지 바꾼 대학가 마라 열풍

진태희 인턴기자 최희준 인턴기자
입력 2019.04.23 12:00
"여기 학식 가격 0.5마라탕인 거 치고는 나쁘지 않기는 해~"
"시급 얼마냐고? 한 1.2마라탕 정도?"

지난 16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마라탕에 '미쳐있는' 친구 때문에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친구가 "마라탕을 오늘도 먹고 말았탕"이라는 각종 '드립' 난무는 물론이고 "시급? 한 1.2 마라탕 정도"라며 돈의 기준을 마라 음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마라탕도 중독인가요?"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이 글에는 2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양꼬치와 칭따오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마라(麻辣)의 시대가 펼쳐졌다. 중국 쓰촨에서 건너 온 마라 열풍이 대학가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처음에는 국내에 유학을 온 중국학생과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는 교환학생 위주로 찾던 곳이 이제는 대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호황을 맞았다.

마라탕(왼쪽)과 마라샹궈
◇"오늘도 마라탕을 먹고 말았탕"

대학가의 마라탕 열풍은 각종 신조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역세권 아니어도 '마세권'(마라 음식점 근처)에 살아서 행복하다"거나 "혈중 마라 농도 측정해봐야 한다"는 표현이 수시로 소셜미디어에 등장한다.

최근에는 ‘맵다’는 표현을 ‘마라하다’는 말로 바꿔쓰는 대학생들도 많다. 마라탕이나 마라샹궈 같은 음식을 일주일 동안 먹는 ‘마라위크’도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는 마라 음식을 '찬양'하는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점심시간만 되면 대학가 앞에는 마라탕을 먹기 위해 줄 서 있는 학생들로 붐빈다. 마라 음식을 좋아해 배달까지 시켜 먹는다는 김남주(23)씨는 1시간이 넘는 긴 대기 시간 때문에 수업에 지각할 뻔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평일과 주말에 걸쳐 강남의 유명한 마라탕 맛집을 찾았다던 윤여송(23)씨는 1시간이 넘는 긴 대기시간에 "들어갈 때쯤이면 지쳐있었지만 그래도 맛있으니 괜찮다"며 웃었다.

◇"중독을 부르는 얼얼함…내 마음대로 재료 골라 먹어 매력적"

'마라'의 마(麻)는 마비, 라(辣)는 매운맛으로 '얼얼한 매운 맛'을 의미한다. 마라를 맛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혀가 얼얼해지는 맛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백모(24)씨는 "처음 마라탕을 먹었을때 맵기조절을 잘못해서 얼굴을 한 대 맞은듯한 얼얼함을 경험한 후 다신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면서도 "그 얼얼한 기분이 묘하게 그리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라의 매력으로 "중독을 부르는 그 생소한 얼얼함"을 꼽았다.

하지만 이 얼얼함만이 마라를 이토록 유행하게 만든 요인은 아니다. 일주일에 두 세번은 마라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다는 진초록(23)씨는 "마라의 얼얼한 맛이 완벽히 취향이 아니지만 자주 먹게 된다"며 "다른 음식들보다 내 마음대로 재료를 골라서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마라 음식에 손이 가는 이유를 밝혔다.

마라 음식은 재료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조선DB
마라탕, 마라샹궈(매운 양념에 고른 재료들을 볶아서 내어주는 중국의 사천 요리), 훠궈(얇게 썬 고기나 해산물, 채소 등을 끓는 육수에 넣어 살짝 익혀 소스에 찍어 먹는 중국 요리) 등을 파는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재료를 골라 직접 마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바구니에 담은 후 재료에 따라 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사람마다, 때에 따라 각기 다른 마라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직접 만들어 쓰는 ‘DIY’가 최근 유통시장의 트렌드인데 마라 음식이야말로 이런 트렌드에 가장 부합한다는 설명도 있다.

대학가에 위치한 한 마라 음식점 주인은 "보통 학생들은 마라탕에는 푸주(중국의 두부 종류 중 하나)와 피쉬볼(동남아시아의 어묵)을 마라샹궈는 넣어 먹는다"며 "중국 당면은 골고루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마라 좋아하세요?"…대학가 인간관계의 척도

모든 대학생이 마라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대학가에서 마라 열풍이 불고 있지만 동시에 마라만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음식도 없다. 마라 냄새도 맡기 싫다고 밝힌 박주희(23)씨는 "마라가 유행이어서 최근 처음으로 친구들과 마라샹궈를 먹어봤다"며 "하지만 향을 시작으로 첫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마라에 크게 데인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그는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맛에 자신이 거부감을 보이는 것 같다"며 "다신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가에서는 마라에 대한 호불호를 놓고 인간관계가 나뉘는 일도 벌어진다. 서울의 한 대학교 중앙동아리 회장인 정모(25)씨는 학기 초 마라탕 때문에 "동아리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신입 부원들과 기존 부원들이 친해져야 하는 시기인데 동아리 뒤풀이 때마다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는 부원들과 마라탕을 먹지 않는 부원들이 나뉘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학가에서 ‘마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이 메뉴를 고를 때 필수 코스로 여겨질 정도다.

마라 음식을 식당이 아닌 집에서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이런 고민을 덜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나온다. 편의점에서도 마라를 활용한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씨유(CU)는 지난해 편의점 업계 최초로 마라탕면을 냈는데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3개월 동안 15만개를 팔았다. 이후 씨유는 마라를 이용한 각종 상품을 내놓고 있다. 다른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마라를 이용한 상품을 계속 출시하고 있어 집에서 혼자 마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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