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의 뉴스를 입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올핑크 BTS의 힘!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4.23 03:01
벚꽃이 바람에 날려 꽃비로 내린 어느 봄날, 시댁과의 갈등으로 울화를 터뜨린 친구에게 누군가 슬쩍 내민 핑크빛 앨범. 벌겋게 달아올랐던 그녀의 두 볼이 복숭아빛으로 가라앉은 건, BTS 새 앨범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 덕분이었다.

베르사체, 샤넬, 디올, 발렌티노 등 핑크색 재킷과 슈즈로 차려입은 멤버들은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뮤직비디오에서 "사소한 게 사소하지 않게 된" 순간을 이야기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산뜻하게 출발하고 싶었다"는 슈가의 말처럼, 팍팍한 삶에 휘둘려 잊고 지낸 뭉게구름 같은 설렘을 한 번쯤 느껴보고 싶었던 거다.

핑크로 머리를 염색한 지민이 압권이었다. 컴백 발표 당일 #핑크지민(#PinkJimin)을 포함한 트윗이 전 세계 50여국 150만여 개가 생성되면서 당일 미국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2위(1위는 BTS)에 올랐으니 BTS가 보여준 핑크 파워에 세계가 들썩인 셈이다. 미국의 배우 겸 가수 드레이크 벨이 핫핑크 가발로 변신하고 "지민과 나 중에 누가 나아요?"라며 '핫'하게 도발했을 정도! 3만여 개 리트윗에 댓글만 7000개가 넘었다. 결과는 안 봐도 지민의 완승. 핑크색은 긴장을 풀게 해준다는 색채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빌리지 않아도, 핑크는 과격한 언어를 부드럽게 바꿔주는 힘이 있다. 연약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치부됐던 과거의 핑크에서 세대와 인종을 넘어서 새롭게 권력을 입은 '남자의 핑크'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핑크핑크~!' 핑크빛으로 물든 BTS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캡쳐
본래 '남자의 색'이었다. 과거 유럽 왕실이나 조선시대 양반가의 복색을 추적하지 않아도, 서부극 스타 존 웨인의 핑크 셔츠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황량한 모래 먼지와 총성이 난무하는 곳에서 핑크는 남성성을 강조했다. 로큰롤 황제 엘비스도 핑크 재킷과 핑크 캐딜락 자동차로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옷 잘 입기로 유명한 '몬타나 최'(최영훈)는 "핑크와 네이비의 만남은, 궁합도 안 보고 결혼해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패션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가 무너지는 요즘, 핑크는 곧 권력이다. 핑크 셔츠는 그 자체로 얼굴빛을 밝게 한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즐겨 입는 것도 핫핑크 슈트다. 드라마 '열혈사제' 속 이하늬가 즐겨 입은 것도 핑크 슈트. 핑크는 마음의 갑옷이자 자신을 사회로부터 지켜내는 '페르소나'인 것이다.


조선일보 A20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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