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2+2' 실종 사건

이용수 정치부 차장
입력 2019.04.23 03:12
이용수 정치부 차장
"부럽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배가 아프네요."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미국과 일본이 외교·국방 장관 회의, 이른바 '2+2 회의'를 가졌다는 소식에 6자회담 수석 대표를 지낸 A씨가 보인 반응이다. 주요 외신들은 2+2 회의를 마친 두 나라 장관 네 사람이 국무부 청사 '벤 프랭클린 룸'에 도열해 회견하는 장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전직 외교부 차관 B씨는 "두 달간 세 차례 정상회담만으로도 밀월인데 2+2까지 한다는 건 미·일 관계가 수사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공고하다는 객관적 지표"라고 했다. 이번 2+2 회의가 곧 막이 오르는 '미·일 연쇄 밀월 이벤트'의 예고편이자 흥행 보증수표란 얘기다.

미국은 아무하고나 2+2 회의를 하지 않는다. 나토 28국을 비롯해 40여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고 있지만 2+2 회의를 여는 나라는 극소수다. 동맹에도 신분·등급이 있다면 '특급 동맹'만 미국과 2+2 회의를 할 자격을 얻는다. 그런 나라가 아시아에 딱 둘 있다. 호주와 일본이다. 호주는 1985년부터 작년까지 28차례, 일본은 1996년부터 이번까지 18차례 미국과 2+2 회의를 했다. 거의 매년 열렸다. 그런 일본이 미국과 2+2 회의를 3년간 열지 못한 적이 있다.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당 하토야마 정부가 미국과 한 후텐마 기지 이전 약속을 뒤집어 미·일 관계가 '전후 최악'에 빠졌던 시기다.

우리도 한때 미국의 2+2 회의 상대였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2년마다 네 번 열렸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 출범 후 2+2 얘기가 쏙 들어갔다. 2018년에 열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올해 추진 중이란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외교가에선 '2+2 실종 사건'이란 말이 돈다.

국방부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 C씨는 "북한 비핵화 담판으로 급박해진 한반도 정세만 놓고 봐도 한·미 외교·국방 장관들이 머리를 맞댈 필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며 "2+2 회의가 안 열린다는 건 한·미 동맹이 껍데기만 남았다는 평가가 사실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한 청와대와 외교부 반응은 충분히 예상된다. 2+2 회의만 갖고 양국 관계를 재단할 수 없다면서 한·미 정상이 일곱 차례나 만났다는 얘기를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미·일 외교사의 빙하기'라는 하토야마 총리 시절에도 정상회담(2009년 11월)은 열렸다. 최대 쟁점인 후텐마 문제에서 아무 진전도 보지 못해 누가 봐도 실패였지만, 두 정상 모두 회견에선 '미·일 동맹'을 지겹도록 얘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분 회담' '외교 참사' 논란을 빚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10년 전 일본 외교관들이 느꼈을 '동맹의 공허함'이 어떤 기분인지, 전직 외교부 관리가 "배 아프다"며 수화기 너머에서 지었을 표정이 어땠을지 알 것만 같다.


조선일보 A30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