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북단체 자유조선 회원 체포… "다른 멤버들도 추적 당하는 듯"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안준용 기자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4.22 03:00

자유조선 변호사, 본지에 밝혀
스페인 北대사관 습격사건 관련

미 사법 당국이 지난 2월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을 습격한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 소속 한국계 미국인이자 전직 미 해병대원인 크리스토퍼 안을 지난 18일(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에서 체포했다. '자유조선' 리더이자 스페인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에이드리언 홍의 거처도 급습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조선의 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과 관련한 미국의 첫 움직임이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5일 전에 있었던 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과 관련, 미국은 "무관하다"며 거리를 둬왔다. '자유조선'이 탈취한 자료를 미 연방수사국(FBI)에 넘겼다고 밝혔을 때도 FBI는 "수사 존재 여부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을 뿐이었다. 그러던 미국 정부가 사건 관련자 체포에 나서자 미국의 '의도'를 둘러싼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 정부가 정상적인 사법 절차 집행이라고 주장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배경엔 정치적인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어난 사건인 만큼 미·북 협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자유조선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자유조선 법률 대리인인 리 월로스키 변호사는 지난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정부가 북한 정권이 고소한 미국인들에게 영장을 집행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미국 시민권자이고, 에이드리언 홍은 멕시코 국적자이면서 미국 영주권자이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21일 본지 통화에서 "미국 사법 당국이 다른 자유조선 멤버들도 추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19일 로스앤젤레스의 연방 지방법원에 출석했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크리스토퍼 안은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 구출 과정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라고 했다. 크리스토퍼 안은 사건 직후 스페인 법원이 밝힌 명단엔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 AP통신은 크리스토퍼 안은 스페인 경찰이 수사 후반부에 확인한 인물로, 그에 대한 국제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20일 전했다. 스페인 법원은 지난달 말 에이드리언 홍과 샘 류에 대해 국제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로스키 변호사는 "최근 북한 정권에 억류됐던 한 미국인은 고문으로 불구가 된 상태로 돌아왔고 살아나지 못했다"고 했다. 북한에 억류됐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2017년 미국에 돌아온 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를 지칭한다. 그는 "우리는 지금 미국 정부가 표적으로 삼은 이 미국인의 안전에 대해 정부로부터 어떤 확인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유명 로펌 보이스실러플렉스너 소속인 월로스키 변호사는 클린턴과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 출신이다.

일부 북한 전문가는 미 당국의 크리스토퍼 안 체포와 관련, "스페인과 북한, 양측을 모두 의식한 원칙적인 조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조선이 미국의 동맹국인 스페인에서 북한 공관을 공격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데다, 스페인 측이 지명수배까지 하고 수사 협조를 요청해온 만큼 미측의 체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향후 자유조선의 입지나 활동 범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재판 과정에서 자유조선의 조직이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 등 과감한 움직임으로 '자유조선'이 새로운 유형의 반북 단체로 주목을 받으면서 미국 정부가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자유조선이 FBI에 탈취 자료를 제공했음을 공개하고 스페인 언론 등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배후설 등을 제기하자 미 정부 내에서 미·북 관계 등을 고려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군 출신의 한 탈북민은 "자유조선이 먼저 FBI와의 연계성을 인정한 게 실책"이라며 "물밑에서 진행될 수 있었던 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꼴이 됐다"고 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미국이 이번 체포를 통해 스페인에는 '동맹국의 법과 질서를 존중한다'는 메시지, 북한엔 '미 정부는 자유조선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북한과 계속 대화하려 한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크리스토퍼 안을 스페인에 넘길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남주홍 전 차장은 "미 국내법 절차상 범죄인 인도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린다"며 "자유조선 회원의 체포가 오히려 장기 보호를 위한 미측의 '위계책'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은 "자유조선이 이번 체포 직후 오토 웜비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미측으로선 '북한으로의 인계 가능성 때문에 관련자를 스페인으로 송환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측이 일단 크리스토퍼 안 체포 후 장기적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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