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난 완벽한 피조물이 되고 싶다"

송혜진 기자
입력 2019.04.22 03:00

[고무줄 몸무게의 배우 크리스천 베일]
영화 '바이스' 딕 체니 役 위해 100㎏까지 체중 늘리며 완벽 재연
'머시니스트' 때는 55㎏까지 감량

매번 허물을 벗는 것이 아니고야 이럴 수가 없다. 영국 출신 배우 크리스천 베일(45)은 종종 스스로를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수도승처럼 보인다. 배역에 몰입하기 위한 모든 것을 집착적으로 준비하고 그 역할에 자신의 영혼까지 갈아 넣는 이른바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다. 역할에 몸을 맞추기 위해 수십㎏의 몸무게를 혹독하게 줄이거나 늘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바이스'에선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를 연기했다. 파이만 먹어가며 20㎏ 넘게 몸을 불렸고 머리까지 삭발해 자신의 모습을 대머리로 바꿨다. 웅얼웅얼 발음을 뭉개듯 토해내는 발성과 씩씩 숨을 몰아쉬는 호흡, 성급한 걸음걸이와 무심한 듯 복잡한 표정까지…. 영화 속의 베일은 순간순간 딕 체니 그 자체로 보인다.

영화 '바이스'에서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으로 변신하기 위해 100㎏까지 살 찌운 크리스천 베일.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바이스'에서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으로 변신하기 위해 100㎏까지 살 찌운 크리스천 베일. 그는 "다른 누군가가 되는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지만 그만큼의 희열과 만족을 준다"고 했다. /콘텐츠판다
돌아보면 그는 매번 그랬다. 엔딩 크레디트에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진, 그가 베일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아메리칸 싸이코'와 '머시니스트', '아메리칸 허슬'과 '배트맨 비긴즈', 그리고 '바이스'의 베일을 돌아보자. 결코 동일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늘 거듭나는 것이다.

35㎏씩 빼고 찌우는 변신술사

크리스천 베일은 열세 살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태양의 제국'에서 영국인 소년 짐으로 출연했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2차 대전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그는 아역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아메리칸 싸이코'(2000)는 이런 그가 온전한 성인 배우로서 올라설 수 있게 해준 작품. 외모 지상주의자이자 여성 혐오자인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극한의 식이 조절과 운동을 통해 완벽한 근육질 신체를 완성했고, 날카로운 내면 연기를 동시에 보여줬다.

이후로도 베일은 탈태(奪胎)를 거듭한다. '머시니스트'(2004)에선 죄책감으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주인공을 구현하기 위해 55㎏까지 감량, 뼈와 가죽만 남은 몸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조금 더 말랐다간 아예 안 보일 것 같아"라는 대사가 여러 번 나올 정도다. 반면, '배트맨 비긴즈'(2005)에선 완벽한 근육질 히어로를 보여주기 위해 90㎏가량까지 몸을 불린다. 목소리는 낮고 무겁다. 대중이 기억하는 '배트맨'의 원형이 베일의 몸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레스큐 던'(2006)에선 전쟁 포로를 연기하기 위해 다시 몸집을 줄였고, '아메리칸 허슬'과 '바이스'를 위해선 다시 100㎏까지 덩치를 키운다. 필요할 땐 물과 위스키만 먹으며 몸을 말리고, 때론 폭식을 거듭해 다른 사람이 되곤 하는 이 배우를 보며 팬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그 때문일까. "나 자신을 컨트롤할 자신이 있다"던 베일도 최근엔 '바이스'를 끝으로 이토록 극단적인 살 빼기와 살 찌우기를 거듭하진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알 순 없다. 그는 항상 극한을 향해 달리니까.

완벽에 닿을 때까지

베일의 이토록 지독한 연기는 그의 영화 철학에서 나온다. 베일에게 영화란 그가 숭배하는 이상향이자 창작품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 속에서 나는 완벽한 피조물이 되고 싶다"고 했다. 베일이 출연하는 영화는 그렇기에 일단 믿고 봐도 괜찮다. 영화 자체에 때론 구멍이 많을지라도 베일은 진흙처럼 그 흠과 결점을 메우고 덮을 줄 안다. 현실에서의 그는 환경보호론자이고 동물 애호가이지만, "영화를 찍을 때만큼은 개인의 정치적인 의견과 목소리를 접고 역할에만 몰두한다"고 했다. 늘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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