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판매 단속’ 부활하나...헌재 결정에 구제샵 '초비상'

최상현 기자
입력 2019.04.20 15:05
헌재 "판매 목적 유사군복 소지 처벌은 합헌"
광장·풍물시장 등 군복 판매 많은 구제시장 위축

이른바 ‘밀리터리룩’으로 불리는 ‘유사(類似) 군복’을 판매하는 ‘구제(舊製) 의류’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유사군복을 판매 목적으로 소지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유사군복은 ‘군복과 형태·색상 및 구조 등이 유사해 외관상으로는 식별이 극히 곤란한 물품으로서 국방부령이 정하는 것’이다.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군복단속법)에 따르면 유사군복을 제조·판매하거나 판매 목적으로 소지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유사군복을 입는 것 만으로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질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광장시장과 동대문구 신설동 풍물시장 등 구제 의류로 유명한 상권에서는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단속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유사군복 매물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15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구형 군복. /최상현 기자
◇단속 걸릴라…동묘시장에 자취 감춘 유사군복

지난 17일 오전 7시 동묘 벼룩시장. 구제 옷 가게가 밀집한 이 곳에 1t(톤) 트럭이 도착하더니 옷 한무더기를 쏟아냈다. 동네마다 있는 헌옷 수거함이나 재활용센터 등을 통해 수집된 구제 옷이다.

상인들은 곧바로 분류작업에 착수했다. 팔릴만한 옷을 골라내는 이른바 '보물찾기'다. 동묘 시장에서 20년째 구제 옷가게를 운영 중인 박영수(58)씨는 "이 바닥에서 군복은 찾는 사람이 많은 효자 상품"이라며 옷 무더기 속에서 군복만을 고르기 시작했다. 박씨는 30분가량의 ‘수색’을 통해 10여벌의 군복을 찾아냈다. 2014년까지 보급됐던 ‘개구리 무늬’ 구형 전투복을 비롯해 1990년대 사용됐던 ‘민무늬’ 전투복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군복을 찾는 상인들은 "이건 상태가 좋네. 단추도 다 달려있고. 상품(上品)이네. 2만원까지 받을 수 있겠네" 등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군복은 내구성이 좋고, 주머니도 크고 많아 작업복 용도로 찾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단속이 심해질까봐 저희들도 많이 위축된 상태예요. 법에 어긋나는 유사군복은 구입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꼼꼼하게 살펴보는 거예요." 분주하게 군복을 찾던 박씨의 설명이다.

사진출처=부산의용촌, 아마존
◇어떤 군복이 단속대상?...구형 얼룩무늬는 단속 제외

유사군복의 기준은 뭘까? 헌재는 이에 대해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군인이 착용하는 군복이라고 오인할 정도로 형태·색상·구조 등이 극히 비슷한 물품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현재 현역 군인들이 입고 있는 디지털무늬 신형 군복은 단속 대상이다. 다만 신형 군복이 자리를 잡으면서 얼룩무늬 구형 군복은 지난 2014년 8월부터 단속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우리 군이 아닌 미군·독일군 등의 군복도 단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유사군복 단속 법안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1973년 군복단속법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군인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 간첩이나 무장공비 침투를 막기 위해서라도 유사 군복 판매를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었다. 헌재도 해당 법률의 입법 취지를 "군인 아닌 자의 군 작전 방해 등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 방지"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밀리터리룩 패션이 유행하면서, ‘유사군복’ 유통량이 늘어 법령을 둘러싸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몇년 간 군복 단속법에 의한 단속실적은 연간 10건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유사군복 판매 단속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박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시대착오적인 군복 판매 금지 법안을 철폐해주나 싶었는데 ‘합헌’ 결정이 내려져 실망했다"며 "앞으로도 단속에 걸릴까 전전긍긍하며 군복을 팔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서 리폼샵을 운영한다는 김관영(25)씨는 매주 한번 꼴로 군복 구입을 위해 동묘 시장을 찾는다. 김씨가 구제 상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에게 "군복을 파느냐"고 묻자 "근처 가게에서 얼마 전에 군복을 팔다가 단속에 걸려 당분간 안 판다"는 대답이 번번히 돌아왔다. 김씨는 "어디서 빼돌린 새 상품도 아니고 중고 군복에 대해서도 단속을 하는지는 몰랐다"며 "앞으로 군복 단속이 더 심해지면 비싼 밀리터리 컨셉 의류를 사서 리폼 의상을 만들어야 하냐는 고민이 든다"고 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의 한 구제샵에서 유사 군복이 진열되어 있다. /최상현 기자
◇군장점서도 군복 구하기 어려워…"100곳 빼곤 전부 불법 영업"

군용장구를 판매하는 군장점에서도 결정 이후 유사군복 문제로 전투복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형 군복을 제조·판매하기 위해서는 국방부에서 ‘군복 및 군용장구 제조판매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장 상인들은 "허가증 발급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수십 년 동안 군장점을 운영한 사람도 무자격 영업을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대로 하면 계급장 오바로크까지 허가받고 해야하는 셈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고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군복 및 군용장구 제조판매업 허가를 받은 군장점은 전국적으로 100여곳에 불과하다. 이 외에는 모두 불법 판매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서울 용산구의 군장점 주인 A씨는 "군인 아닌 사람에게 군복을 팔지 말라고 만든 법이 군인에게도 군복을 못 팔게 하고 있다"며 "군복을 구매하는 사람 대부분이 사제 군복으로 멋내고 싶어하는 현역 간부나 전역 후 몸이 불어 원래 군복이 맞지 않는 예비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군복을 안 팔면 예비군들 상당수가 훈련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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