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헌재' 마지막 퍼즐의 완성

김은정 기자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4.20 03:00 수정 2019.04.20 05:16

文대통령, 해외순방 중 이미선·문형배 전자결재로 임명
헌재 9명 중 6명이 우리법·인권법·민변 출신 등 親정부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이미선·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현지에서 전자 결재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대통령·대법원장·여당이 지명한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모두 6명으로 늘었다. 독자적 위헌(違憲)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6명)를 채우게 된 것이다. 특히 9명 중 5명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른바 '사법부 주류'로 떠오른 우리법·인권법연구회와 민변 출신이다.

법조계에선 "헌재 재판관 다수가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채워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며 "헌재가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등 쟁점 법안을 정부의 뜻에 따라 폐기할 수 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선·문형배 재판관은 전날 임기가 끝난 서기석·조용호 재판관 대신 이날부터 헌재 업무를 시작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공백이 하루라도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빈 방문 중인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시각 낮 12시 40분 전자 결재로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재가했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교체된 헌법재판관 8명 중 절반인 4명이 국회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우리법 출신 소장 양 옆에, 우리법·인권법 출신 재판관 -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신임 헌법재판관 취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에 전자결재로 임명한 문형배(왼쪽), 이미선 재판관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로써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대통령·대법원장·여당이 지명한 친정부 성향 재판관이 6명으로 늘어 이들만으로 독자적 위헌(違憲) 결정이 가능해졌다. 유 헌재소장과 문 재판관은 법원 내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이 재판관은 그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여권은 야당 반발과 여론 악화에도 이날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해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체 판사의 20% 정도에 불과한 우리법·인권법연구회 출신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했다는 점에서 '사법부 다양화'라는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과 법조계에선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재판관 인사를 통해 헌재를 장악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마음에 안 드는 법, 스스로 적폐라고 규정한 법을 헌재에 넘겨서 무더기로 위헌 결정 하려는 것 아니냐"며 "철저한 '코드 사슬'로 엮여 있는 이 후보자 임명은 좌파 독재의 마지막 키(key)"라고 했다.

주식 투자 관련 의혹이 있는 이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해 온 자유한국당은 "헌재도 대통령 코드 인사로 채워졌다"며 20일 대규모 장외투쟁 집회를 열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이미선·문형배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이념 편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들은 이날 "진보 성향 재판관들이 수적 우위를 점해 헌재 결정이 요동칠 것"이라며 "'코드 헌재'가 정부 성향에 맞는 위헌 결정을 잇따라 내리면서 입법부의 법률 제정권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헌재 내부에서도 "진보 성향 재판관으로만 독자적으로 위헌 선고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는 전체 판사(3000명)의 20% 정도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은 각각 100여 명, 480여 명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들은 사법부 주류로 급부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도 두 연구회 출신이다. 여기에 진보 성향 변호사 모임인 '민변' 변호사들까지 대법관·헌법재판관으로 속속 임명되면서 두 최고 사법기관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법정'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이런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 헌법재판소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총 9명이다. 이 중 8명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었다. 이렇게 많은 재판관을 한 대통령이 임명한 적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도중 탄핵돼 벌어진 일이다. 이날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임명으로 재판관 8명 교체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재판관 9명 중 5명이 우리법연구회(유남석 소장, 문형배 재판관), 인권법연구회(김기영·이미선 재판관), 민변(이석태 재판관) 출신이다. 이미선 재판관의 경우, 남편 등 가족을 포함하면 우리법연구회, 인권법연구회, 민변, 참여연대 등 '4대 코드'와 연결돼 있다.

헌재에는 사회적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건이 여럿 들어와 있다. 사형제와 군 동성애, 선거 연령 제한,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죄,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 대일 청구권 등을 심리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종교인 과세 특혜,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의 사건도 접수돼 있다"고 했다. 헌재는 독자적 헌법 해석을 통해 사실상 헌법 개정에 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또 위헌 결정을 통해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른바 '사법에 의한 입법(judicial legislation)'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들이 헌법부터 개별 법률까지 다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법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9명 중 5명이 이런 진보 성향 단체 출신이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중 대법관 4명을 더 교체할 수 있어 이런 진보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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