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응원한 '착한 닭갈비'에… 주문전화가 쏟아졌다

이건창 기자
입력 2019.04.20 03:00

강원 산불 진화 후 닭갈비 업체가 해남 소방관에 선물 보내자
네티즌들 "착한 회사 돕자" 하루 100통씩 전화… 평소의 5배

지난 9일 전남 해남군 해남읍 해남소방서로 빨간색 테이프가 감긴 스티로폼 상자가 배달됐다. 손질한 닭고기와 야채, 떡 등 춘천 닭갈비 재료가 들어 있었다. 총 27인분이었다.

상자 안에는 손 편지도 한 통 있었다. 자신을 "강원도 춘천에 사는 시민"이라고 소개한 그는 "동해안 산불 진화에 애써 주신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특히 천리 길 가장 먼 곳에서 밤새 달려와 주신 해남소방서 소방관들께 약소하고 보잘것없는 닭갈비를 조금 보낸다"고 썼다. 편지 제목은 '대한민국 영웅들께'였다.

지난 4~5일 강원도 동해안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전국에서 소방관 1985명이 진화에 참여했다. 해남소방서 소방관 6명도 펌프차 두 대를 타고 출동했다. 해남소방서에서 불이 난 고성군 토성면까지는 570㎞다.

해남소방서 한민호(34) 소방교는 "택배에 '해남소방서'로만 돼 있어서 처음에는 선뜻 뜯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 소방교는 "보낸 사람 전화번호가 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작은 정성인데 맛있게 드시라'고만 하더라"고 했다. 뜻밖의 선물에 해남소방서 직원들은 그날 저녁 구내식당에서 '닭갈비 파티'를 열었다.

일러스트=박상훈

5일 새벽 당직을 서다 고성으로 출동한 해남소방서 안재용(26) 소방사는 "밤을 새우고 간 터라 몸은 피곤했지만,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을 보고 참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안 소방사는 "진화 작업을 마치고 해남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시민들로부터 박수받아 이미 보람찼는데 닭갈비 선물까지 받아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해남소방서는 전남소방본부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에 닭갈비 사진과 편지를 올려 감사의 뜻을 표했다. 사연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네티즌들은 소방서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에서 택배 송장(送狀)과 닭갈비 재료 포장을 분석해 후보 업체를 추렸다. 지난 12일 한 네티즌이 택배를 보낸 곳이 강원 춘천시의 A업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네티즌은 '이렇게 착한 업체를 주문으로 혼쭐내주자'며 해당 업체의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A업체는 춘천 일대 닭갈비 식당과 구내식당에 닭고기를 도매로 납품하고, 일반 소비자에겐 전화 주문을 받아 닭갈비 재료를 팔고 있다. A업체 사장 권모(49)씨는 19일 본지 통화에서 "소매 주문은 하루 20건 정도였는데 인터넷에 전화번호가 알려지고 며칠 지나자 매일 100통 정도 주문 전화가 걸려 왔다"며 "소매의 경우 재료 손질, 포장 등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보니 주문을 다 소화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건 손님들에게 "주문·배송이 밀려 있다"며 양해까지 구하고 있다고 했다.

권씨는 "기사가 크게 나가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까 두렵다"며 업체명이나 본인의 실명을 밝히길 거절했다. 그는 "전 국민이 다 감동한 일에 작은 보답을 했을 뿐인데 너무 미화된 것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권씨는 "평소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예산이 부족해 일부 소방관이 소방 장갑을 사비(私費)로 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주문 전화가 잠잠해지면 이번에 올린 매출로 다른 소방서에도 닭갈비를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소방관들이 그 좋은 강원도에 오셔서 아름다운 동해안도 못 보고, 닭갈비도 못 먹고, 밤새 진화하고 컵라면 한 그릇 먹고 바로 돌아가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국민 여러분도 저희 집보다는 산불로 피해 본 이재민들,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소방관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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