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國에서 우호국으로… 한국·베트남 수교의 '1등 공신'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4.20 03:00

마이 리엠 쭉 前 베트남 장관 "한국 덕분에 경제 성장 가능했다"

과거 그에게 한국은 분명 총부리를 맞댄 적국(敵國)이었다. 동독 유학 중 귀국해 북베트남군의 일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 통신병으로 전장을 누볐다. 매형은 한국군의 총에 맞아 다리를 잃었다. 그런데도 1980년대 말 베트남 정보통신부 전화국장 자리에 있던 그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신규 이사국이 되려는 한국의 손을 들어줬고, 이 우호적 제스처가 3년 뒤 한국·베트남 수교의 물꼬를 텄다.

최근 서울에서 만난 마이 리엠 쭉(Mai Liem Truc·75) 전 베트남 정보통신부 장관은 한국·베트남 수교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베트남 사람들을 잘살게 하려면 외국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이라면 과거는 접어두고, 새 관계를 맺는 게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이 리엠 쭉 전 베트남 정보통신부 장관은 “만약 베트남이 1992년보다 더 빠른 시기에 한국과 수교했더라면 지금 더욱 발전한 나라가 돼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마이 전 장관은 베트남 정보통신부에서 통신국 과장, 국제국 부국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고문 역할을 하는 수석 차관직을 맡고 있다. 1989년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ITU 회의 당시 베트남은 ITU 행정 이사회의 43개 이사국 중 하나였다. "쉬는 시간에 한국 대표단이 불쑥 찾아와 이사국에 선출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지요." 그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 대표들에게도 한국 지지를 요청했다. 이 도움에 힘입어 이사국이 된 한국은 8회 연속 이사국 지위를 이어오며 글로벌 정보통신(IT) 강국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마이 전 장관은 "한국을 도운 건 바로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이었다"고 했다. "전쟁 때문에 국민 400만명이 죽었고, 농업·제조업 기반 시설은 파괴됐습니다. 미국의 통상금지령까지 떨어져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배를 곯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도움이 절실했어요."

그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1989년 베트남의 전화선은 불과 10만 회선이었고 대부분 교환대를 통하는 구식이었다. 1991년 한국 기업이 23개 성(省)에 진출해 200만개 회선을 설치했다. 현재 베트남의 유·무선 전화 회선 수는 모두 1억5000만개로 늘어났다. 마이 장관은 "국가 기간 산업인 통신 발전 덕분에 베트남 경제도 성장할 수 있었다"며 "한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베트남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그 덕분에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이 큰 선물을 하나 주겠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라를 위한 일이었을 뿐인데… 그저 제 고향에 초등학교 하나 지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조선일보 A29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