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컷 원한 암컷 덕에…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곽아람 기자
입력 2019.04.20 03:00

비행보다 美를 목적으로 진화한 빛깔 고운 다양한 새를 예로 다윈의 '性선택' 이론 입증
"여성의 '꽃미남' 선호도 마찬가지… 심미적 배우자 선택을 통해 남성의 폭력성 줄이도록 진화"

아름다움의 진화

리처드 프럼 지음|양병찬 옮김|동아시아
596쪽|2만5000원

에콰도르에 사는 곤봉날개마나킨새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날개를 등 위에서 재빨리 마주쳐 소리 낸다. 이 구애 행위를 위해 수컷 곤봉날개마나킨의 날개 뼈는 속이 텅 비어 있는 다른 조류들과는 달리 속이 꽉 차 있도록 진화했다. 대부분의 조류가 1억5000만 년 동안 보유해 온 비행에 유리한 날개 디자인보다는 암컷에게 선택받기 유리한 형태를 택한 것.

조류학자 리처드 프럼(58) 예일대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배우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성적 이점은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생존적 이점을 능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잘생긴 용모를 가졌지만 무모함 때문에 요절한' 제임스 딘 스타일의 수컷이 '책만 파면서 여든 살까지 생존한' 범생이 스타일의 수컷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생존하는 '자연선택'뿐 아니라 배우자의 선택을 받은 개체가 번식하는 '성(性)선택'도 진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책의 주제다. 자연선택과 마찬가지로 성선택도 찰스 다윈이 제시한 개념. 다윈이 1871년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미적 취향을 가진 심미적 존재'인 암컷이 더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해 진화의 능동적 주체로 작용한다"는 이론을 내놓았을 때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 과학자들은 "암컷이 배우자 선택을 하는 데 있어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인지 능력이나 기회를 갖고 있다니 말도 안 된다"며 조롱했다. 그 때문에 성선택은 자연선택에 가려 맥을 추지 못하게 됐다. 저자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만으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면서 "진화에 수컷의 선호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건 진부한 진화심리학의 '뻔한 소리' 중 하나"라고 말한다.

반짝이는 오렌지색 관모를 자랑하는 수컷 기아나바위새(왼쪽)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갈색의 암컷(오른쪽). 리처드 프럼은 “수컷의 장식물은 까다로운 암컷의 안목에 맞춰 진화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동아시아

저자가 특히 방점을 찍는 건 개체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한 지표라는 종래의 학설을 부정하고, 아름다움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형질이 진화하는 것은 단지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암컷의 '성적 자율성' 또한 저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다. 95% 이상의 조류 종들에겐 수컷의 음경(陰莖)이 없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암컷이 폭력적 성관계를 거부하기 위해 음경 없는 수컷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음경이 남아 있는 어떤 종류의 오리는 암컷한테서 선택받지 못해도 강제 성관계를 시도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오리 암컷 생식기는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새의 암컷이 성적 자율성을 확보받아 아름다운 수컷을 선택해 온 것이 조류의 아름다움이 진화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통해 성적 자율성이 단순한 정치적 아이디어나 철학 이론이 아니라 자연적 결과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도 말한다.

인간 역시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오랑우탄과 고릴라 수컷은 암컷보다 평균 두 배 이상 덩치가 크지만, 인간 남성의 체구는 여성보다 평균 16% 클 뿐이다. 유인원 수컷들과는 달리 인간 남성 송곳니는 여성과 크기가 비슷하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의 남성보다는 이른바 '꽃미남'을 선호한다. 저자는 "심미적 배우자 선택을 통해 남성의 강제적·파괴적·폭력적 성향을 줄이는 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열 살 때부터 새를 관찰했다는 저자가 열대의 숲속, 빛깔 고운 다양한 새들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며 펼치는 지적 여정이 매력적이다. 과학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 좀 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도 읽힌다. 저자는 말한다. "다윈은 '진화는 적자생존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개체가 주관적 경험에서 느끼는 매력과 감각적 기쁨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점을 발견했다." 이 책으로 저자는 2018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원제 The Evolution of Beauty.


조선일보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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