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5년, 차라리 '침묵'이 속죄의 길 아니었을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4.20 03:00 수정 2019.04.26 13:31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며칠 전 광화문까지 나갔다. 세월호 사건 후에 설치된 천막들이 철거되었다. 나는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부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2014년 4월 16일은 우리 겨레가 할 말을 잊은 슬픈 침묵의 하루였다. 300여명이나 되는 젊은 목숨을 희생시킨 후진사회의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참사였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누구도 '그 책임은 나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인명에 관한 책임을 맡기면서 안전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손님의 안전을 책임진 선장과 기관 책임자들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그대로 실내에 대기하라'고 지시해 놓고 자신들만 탈출한 사태를 만든 책임자는 누구였는가.

우리 사회 지도층 모두의 안전 불감증이었다. 몇 달 전에는 강릉에서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코레일 책임자가 날씨 탓이었다고 말해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그렇게 전문성 없는 사람을 추천 임명한 당사자는 우리 정부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종교지도자로 자처하는 인사 중에 '우리의 정신적 과오도 있었다'고 고백한 사람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어떠했는가. 비참한 사태와 자녀를 잃고 고통을 참고 있는 유가족의 상심과는 아랑곳없는 정치적 발언과 정권적 이해득실을 더 앞세우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차라리 침묵 속에 고통스러운 공감이 절실했어야 했다.

매일 일어나고 있는 자동차 사고를 집계하면 세월호보다 희생자가 더 많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 뒤따른다. 그런데 보도되는 것을 보면 경찰 간부나 치안의 책임을 맡은 고위층 인사들이 음주운전을 하는 경우가 그치지 않는다. 음주운전을 하면서도 법에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반질서적이며 비도덕적인 관념에 젖어 산다. 그 사회악이 얼마나 지대한가. 누구를 책망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자신, 특히 지도층에 속한다고 자인하는 사람들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의 교통질서가 선진사회에 도달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의 직간접적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 여행을 많이 가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중남미를 여행할 때 자기 나라 항공기를 이용한다. 중국과 중남미를 후진사회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도 교통질서에서는 후진 국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날 광화문을 떠나면서 자문했다. '내 목숨을 희생시켜 어린 생명을 구출할 수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제물이 되었을까?'


조선일보 B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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