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가덕도신공항’의 불편한 진실

가덕도=곽승한 수습기자
입력 2019.04.21 06:52

“선거 때만 되면 들쑤셔 … 우리가 ‘봉’인가”

“여기 사람들은 이제 관심도 없고, 뉴스에 가덕도 공항 이야기가 나오면 ‘또 선거할 때가 됐나 보다’ 합니더. 그냥 지들 표 따묵는 밭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예. 섬이라 인구도 적으니까 개무시하기 딱 좋다 아입니까. 가덕도를 봉으로 생각하는 걸로 볼 수밖에 없죠.”

지난 4월 16일 촬영한 부산 가덕도 대항동 일대.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선다면 이곳 앞바다를 메워 건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가덕도 대항동에 사는 황영우(56)씨는 ‘가덕도신공항’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가덕도는 부산 밑 끝자락에 있는 인구 3000여명의 섬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부산 강서구 소속으로 부산 시내와 김해, 창원에서는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섬 주민들이 사는 마을은 크게 가덕도동, 천성동, 대항동 3곳이다. 이 중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덕도신공항’의 예상 부지는 대항동 일대 앞바다이다. 이곳 바다를 흙으로 메워 공항을 만들고 땅에는 공항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낸다는 계획이다.

만일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확정되면 대항동 원주민들은 당연히 이곳을 떠나야 한다. 평생 살았던 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수 있지만, 정작 대항동 주민들은 신공항 추진 논란에 무덤덤했다. 십수년 반복되어온 논란에 지친 ‘체념’에 가까웠다. 가덕도에서 나고 자라 현재는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황씨는 “경기도 어려워 장사도 안 되고 어업 작업량은 몇 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 “살기는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자기들끼리 가덕도에 공항을 ‘짓네 마네’ 하고 있다. 정작 가덕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가덕도에서 5대째 살고 있다는 구문자(64)씨는 공항 건설에 극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구씨는 “여기에 공항 짓는다는 이야기 나온 지가 워낙 오래됐고, 말만 하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해서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이라며 “공항을 지으면 보상도 제대로 못 받을 것 같아 반대한다”고 했다. 구씨는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바다 일로 먹고살아왔는데 바다를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도 했다.

“당장 사람들 먹고살게 하는 게 급선무”

지난 4월 15일부터 3일간 둘러본 가덕도에서는 내륙의 불경기 여파가 강하게 느껴졌다. 새바지방파제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며칠째 바다로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낚시꾼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는 낚시 어선이나 직접 배 타고 나가 잡아온 해물로 횟집을 운영하는 게 이곳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하지만 가덕도의 바다는 ‘불경기’였고 어선들은 ‘실업’ 상태였다. 방파제에 자리를 잡고 낚시하는 이들이 열댓 명 있었을 뿐, 식당은 빈자리였고 펜션은 빈방뿐이었다. 새바지방파제 바로 앞에서 낚시용품점을 운영하는 노용주씨는 “요즘이 비수기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장사가 안 돼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노씨는 “바라지도 않는 공항 짓는다고 변죽만 올릴 게 아니라 당장 사람들을 먹고살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3~4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했다. 노씨의 남편은 낚싯배를 운행하는데 이날 낚시 손님은 1명뿐이었다.

인구 3000여명의 섬에서 영업 중인 부동산중개업소는 12곳으로 꽤 많은 편이다. 바다 보이는 전원주택을 짓고 살려는 사람이 주 고객이지만, 한때는 공항 건설 소식에 땅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가덕도 부동산 업자들에게 “요즘 공항 짓는다는 말이 다시 나오고 있는데 땅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있나”라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사는 사람도 없고 파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말하던 ‘체념’과 ‘무관심’이 부동산 업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가덕도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 A씨는 “박근혜 정부가 워낙 부패한 것 같아 문재인을 뽑았지만, 이렇게까지 못할 줄은 몰랐다”며 “공항 짓는다는 이야기도 한두 번 속았어야지, 이 정부가 코너에 몰리기 시작해서 부산 표가 떨어져나갈 것 같으니까 꺼내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민들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으니 민심이 돌아서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덕도신공항 추진 논란은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부산 지역 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신공항’을 언급하며 시작됐다. 김해공항이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항공 수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이어 2006년 12월 ‘동남권 신공항’ 공식 검토가 시작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이던 2007년 12월 ‘동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11년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백지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당선자 시절이던 2013년 1월 동남권 신공항을 추진을 공약했다. 당시 가덕도와 밀양이 부지 후보로 선정돼 TK와 PK가 신공항을 두고 맞붙는 형국이 됐다. 지자체장들과 지역구 의원들도 공항 유치에 앞다퉈 나섰다. 정부가 신공항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드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16년 6월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라는 외국 기관에 입지 선정에 대한 평가와 결정을 위탁했다. ‘제3자’의 판단은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라는 것이었다. 입지와 경제성, 환경영향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 다른 곳에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하나 더 짓는 ‘김해신공항’ 추진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지난해 4월 5일 김해시청 앞에서 김해신공항 건설 반대운동에 나선 경남 김해 시민들. 이날 집회에서 일부 시민들은 소음대책 없는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며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가덕도로 이전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예타’ 개편으로 힘받나

그렇게 겨우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였던 ‘동남권 신공항’ 논란은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동남권 신공항을 관문 공항으로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여기에 지난해 지방선거로 당선된 부산·울산·경남 지자체장들 사이에서 가덕도신공항 추진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거돈 현 부산시장은 가덕도신공항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민주당 출신인 오거돈 시장이 청와대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지 않겠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당시 청와대는 ‘공식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작년 12월 부·울·경 시도지사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을 추진하겠다며 기존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지난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지역 경제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항 사업 검증 주체를)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가덕도신공항 재추진이 힘을 얻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방향을 정해두고 한 말이 아니라 결정을 신속히 하겠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부산시는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한 반면 대구시는 “원론적인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며 시각차를 보였다. TK지역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PK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했다.

지난 3월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기존 계획인 김해신공항을 그대로 추진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밝혀 가덕도신공항에 제동을 거는 듯했다. 최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 2차관을 지내며 ‘김해신공항’ 결정 관련 실무를 맡았었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로 최 후보자가 낙마하는 탓에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국토부의 구심점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4월 3일 정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 개편 방안’은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개편 방안의 핵심은 ‘경제성’보다 ‘지역균형’을 더 비중 있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35~50%인 ‘경제성’을 30%~45%로 낮추고, 25~35%인 ‘지역균형’을 30~40%로 높이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못한 가덕도신공항이 이를 계기로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표 끌이’ 수단

지금의 김해공항이 너무 좁고 수용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공감을 받고 있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김해공항은 실내도 좁아서 휴가철에는 도떼기시장처럼 사람들로 미어터져 불편하고, 항공기 편수도 더 들어갈 여력이 안 돼서 항공사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상황”이라며 “공항을 새로 짓든지 확장하든지 해결책은 꼭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김해공항의 치명적 단점은 소음문제 때문에 24시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확장 공사를 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소음 문제’는 김해신공항 추진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 역시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김해공항보다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이 뒤진다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건설비용과 경제성 면에서 가덕도신공항은 김해신공항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둘러싸고 해묵은 논란이 반복되는 건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이전의 결정을 뒤집고 ‘뭔가 해낼 것처럼’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속은 늘 지켜지지 못했다. 공항 건설은 정치인들의 ‘지역 민심 관리 수단’이자 쏠쏠한 ‘표 끌이’ 수단에 그쳤다. 그런 탓인지 현재 500만 인구의 호남지역에만 4개의 공항(무안, 군산, 여수, 광주)이 있다. 한국공항공사 자료에 따르면 이 4개 공항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누적 적자는 총 1300여억원이 넘는다. ‘김대중 공항’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던 무안공항은 2017년 한 해 13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14개 지방 공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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