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스토리]식당 4개 사장님 'K아티스트' 김병현 "야구가 입맛 까다롭게 만들었죠"

스포츠조선=박재호 기자
입력 2019.04.18 13:12
◇식당 사장님으로 변신한 김병현. 6개월전 오픈한 자신의 태국 레스토랑에서 포즈를 취했다.
눈부신 햇살에 벚꽃이 하나 둘 흩날리던 4월 중순. 서울 남산자락 해방촌의 어느 좁은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허름한 외관의 태국 레스토랑 문을 열자 현대식 인테리어가 손님을 반긴다. 허름한 점퍼 차림의 낯익은 중년 남성은 환하게 웃고 있다. 메이저리거 시절 'K아티스트'라 불렸던 'BK' 김병현(40)이었다. 늘 고집스런 정면승부 이미지의 그였지만 세월속에 여유와 웃음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김병현 2006년 WBC 국가대표 시절. 스포츠조선DB
성균관대 재학중이던 1999년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했다. 당시 계약금 225만달러는 여전히 한국 아마추어 선수 메이저리그 최고 계약금. 애리조나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도 챙겼다. 전성기 때는 언터처블 '핵잠수함'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2002년 72경기 8승3패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는 경이로운 성적이었다.
김병현 2003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스프링캠프. 스포츠조선DB
2010년까지 미국프로야구에서 활약했고, 이후 일본프로야구(라쿠텐 골든이글즈)-넥센 히어로즈(2012~2014)-KIA 타이거즈(2014~2016)에서 뛰었다. 2017년에는 도미니카 윈터리그(히간테스 델 시바오), 지난 겨울에는 호주(멜버른 에이시스)까지 진출했다.
고향팀에 복귀한 김병현. 스포츠조선DB
끝없는 야구 열정만큼이나 에피소드도 많다. 소탈한 성격, 자유로운 영혼인 김병현이 요식업 사업가 성공 변신. 많은 이들은 상상조차 못했다. 레스토랑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4개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스시 레스토랑을 2개 운영하고 있다. 사업파트너에 경영을 맡겨둔 상태다. 광주에서는 일본식 라멘집 프랜차이즈 사업도 하고 있다. 직접 라면집을 운영하면서 60곳이 넘는 가맹점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물류사업을 병행중이다. 6개월전에는 새로 터를 잡은 남산밑에 태국 레스토랑을 열었다.
▶"야구가 내 입맛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김병현은 "요식업에 소질이 있다기보다 프로야구 선수로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태국 음식점은 어쩌다 들른 조그마한 태국 식당 음식이 너무 맛있어 투자를 결정했다. 주방장 겸 사장이었던 현 직원을 설득해 새롭게 레스토랑을 개업했다. 직접 음식을 하거나 레시피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메뉴 설정과 음식 맛에 대한 까다로운 조언은 아끼지 않는다.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스시집은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자주 찾는 지역 맛집이다. 류현진(LA다저스)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 한국선수들도 미국 서부쪽으로 원정을 오면 빼먹지 않고 찾는다. 김병현은 "동생들이 맛있게 먹고 가면 정말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첫 식당을 오픈한 지도 벌써 10년. 수익도 수익이지만 새롭게 삶을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병현은 "조만간 수제 버거 전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준비작업을 어느정도 마쳤다. 야구장에서는 버거와 치킨이 대표 먹거리 아닌가. 언젠가는 야구팬들에게도 버거를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내 야구는 불만족 덩어리. 전성기는 1999년
김병현은 지난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구장 체이스필드에서 시구를 했다. 류현진의 선발등판 경기였다. 김병현은 아래가 아닌 위로 가볍게 볼을 던졌다. 애리조나 구단은 팀의 레전드이자 우승멤버인 김병현을 '애리조나 역대 최고 마무리'로 평가하고 있다.
홈구장에는 애리조나 구단 기념관도 있다. 김병현의 대형사진과 각종 기록물, 기념품들을 전시한 'BK 특별부스'도 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에 갔을 때 친근한 이들과 즐겁게 해후했다. 나를 기념한 특별부스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병현은 성공한 메이저리거다. MLB통산 54승60패86세이브를 기록했다. 애리조나와 보스턴에서 두번의 월드시리즈 우승(2001년, 2004년)을 경험했다.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메이저리그에서만 2000만달러를 넘게 벌었다. 만 45세부터는 메이저리그 연금도 신청할 수 있다. 김병현이 수령할 수 있는 연금액은 연간 20만달러 이상의 큰 돈이다.
김병현은 야구든, 사업이든 대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36세이브를 따냈던 2002년이 최전성기라고 말하지만 김병현은 "나는 1999년 이후로 계속 내리막이었다. 나 스스로 구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메이저리거 시절 수도없이 피칭폼을 변화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김병현은 개인적으로 가장 위협적이었던 타자로 새미 소사를 꼽았다. "스윙을 하면 방망이에서 장풍같은 바람이 나와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20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도전과 맞서야 했던 시절, 외로움은 가장 큰 적이었다. 김병현은 "그때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만약 KBO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뒤 미국으로 갔더라면 생활 등에선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마운드가 그립다
김병현은 지난 겨울 호주리그를 끝으로 사실상 현역 야구선수 생활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은퇴라는 단어를 얘기하자 쉽사리 매듭을 짓지 못했다. 환하게 웃으며 "이제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라고만 했다. 지난겨울 호주리그에선 9경기에서 1승 평균자책점은 0.93을 기록했다. 완벽한 성적이었다. 김병현은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피칭 느낌을 가졌다. 다만 구속은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시속 150km 강속구로 상대를 윽박지르던 핵잠수함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야구 아직도 생활의 일부분이다. 8년전부터 아예 술을 끊었다. 버릇처럼 몸관리를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TV해설에 대해선 "말주변이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코치 얘기를 꺼내자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겸손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이들은 야구인 천지다.
LA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는 2004년 보스턴에서 같이 뛰었다. 로버츠 감독은 2004년 보스턴에서 도루 하나로 유명해졌다. 뉴욕양키스를 상대로 한 아메리칸리그챔피언십 4차전에서 9회 극적인 도루 승리로 승리 디딤돌을 놨다. 이후 보스턴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월드시리즈에서 꺾고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
김병현은 "로버츠 감독은 현역 시절 발이 매우 빨랐던 선수로 기억한다. 다저스 선수들을 만나면 '우리 감독이 머리는 그렇게 명석한 편이 아니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고 껄껄 웃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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