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 스파게티에 '사라다'… 추억 속 그때의 맛!

김수경 기자
입력 2019.04.16 03:01

80년대 경양식… 과일 소스를 뿌린 넓적한 돈가스, 계란프라이 얹은 햄버그스테이크
뉴트로 열풍 따라 핫해진 경양식 "타임머신 타고 돌아간 느낌"

"너희 아빠랑 데이트할 때 이런 곳에 오곤 했지. 아빠가 돈가스도 썰어주고, 스파게티도 돌돌 말아 먹여주고…. 지금은 돈 줘도 안 하겠지만(웃음)." 직장인 장원지(27)씨는 며칠 전 부모님과 서울 목동 한 경양식집에서 외식하다가 어머니로부터 이런 농담을 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즐거워하시더라고요. 식사하시는 내내 추억에 젖은 표정이었죠. 저요? 타임머신을 타고 드라마 속 옛날 풍경으로 들어온 것 같다고 할까요?"

고기 망치로 납작하게 펴서 튀겨낸 돈가스, 케첩과 마요네즈를 버무린 양배추, 녹진한 소스를 곁들인 오므라이스와 햄버그스테이크…. 1970~80년대 유행했던 경양식(輕洋食)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잊힌 음식이었다. 정통 프렌치, 정통 아메리칸 퀴진이 흔해진 시대. 굳이 근대의 음식까지 찾아 먹기엔 먹을거리가 너무 많았다. 그런데 최근 뉴트로(new+retro; 새로운 복고)의 영향으로 경양식이 다시 유행의 중심에 섰다. 인스타그램에서 '#경양식'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만 3만6000여 개. 10~20대는 새롭고 낯설어서 열광하고 40~50대는 반갑고 그리운 마음으로 찾는다.

서울 목동 ‘가정경양’의 대표 메뉴인 ‘가정 돈가스’ ‘옛날 맛 토마토 스파게티’ ‘가정 함박 스테이크’(위). 예스러운 느낌을 위해 낡은 장롱문으로 식탁을 만들었다. 서울 예장동에 있는 정통 일본식 경양 식당 ‘그릴데미그라스’의 ‘비후가스’(왼쪽)·‘새우 후라이’(오른쪽)도 그리운 옛날 맛을 보여줘 인기다. /고운호 기자

서울 목동의 '가정경양'은 이 같은 유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 손바닥 두 개를 합친 듯 큼직한 돈가스에 각종 과일을 갈아 만든 소스를 올린 이른바 '가정 돈가스'로 이름난 곳이다. 삶은 푸실리(꽈배기 모양의 파스타)를 케첩에 버무린 반찬, 무생채까지 그야말로 옛날식. 또 다른 대표 메뉴인 '옛날 맛 토마토 스파게티'는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쓰는 것보다 조금 더 예스러운 케첩 맛이 나는 토마토소스를 공수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된 장롱 문으로 만든 식탁과 빈티지 포크·나이프까지 인테리어도 1970년대 스타일. 추교원(40) 대표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좋은 옷 차려입고 외식하던 옛날 경양식당을 추억하며 만든 공간"이라고 했다. 입구에 걸린 문패는 40년 전 추씨의 아버지가 손수 집 앞에 걸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인 빈티지 라디오는 친척 집에서 가져온 것이랬다.

서울 팔판동에 있던 정통 일본식 경양 식당 '그릴 데미 그라스'는 최근 서울 예장동 오리엔스 호텔 지하로 옮겼지만 여전히 인기다. '사라다'라고 흔히 불렀던 모닝빵을 곁들인 옛날식 감자 샐러드와 계란 샐러드, 닭뼈를 오래 끓여 만들었다는 갈색 데미그라스 소스를 끼얹은 햄버그스테이크와 바삭한 '새우 프라이'가 변함없는 인기 메뉴다. 서울 익선동에 있는 '경양식 1920'도 반숙한 계란 프라이를 얹은 햄버그스테이크와 넓게 편 돈가스로 소문난 곳. 서까래가 보이는 한옥 천장 아래 경양식을 운치 있게 즐길 수 있다. 지난해 말 문 연 서울 인사동 경양식 다이닝 '관훈맨션'은 소고기와 와인을 졸여 만든 데미그라스 소스를 곁들인 오므라이스를 내놓는다. 서촌 유명 빵집 '효자 베이커리'에서 매일 아침 배달받는 모닝빵과 딸기잼, 수프도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유행에 뒤질세라 최근엔 호텔들도 경양식 메뉴를 내놓고 있다. 글래드 여의도 호텔의 레스토랑 '그리츠'는 이번 달부터 햄버그스테이크와 수제 왕돈가스, 크로켓(고로케) 등을 뷔페 메뉴에 추가했다. 햄버그스테이크에는 트러플 오일을 끼얹고, 크로켓에는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다져 넣었다. "최근 부는 뉴트로 바람을 새롭게 해석해 보려 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일보 A20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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