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민 업무수첩, 곽상도·이중희 '수사 개입' 밝힐 열쇠되나

박현익 기자
입력 2019.04.15 11:44 수정 2019.04.15 13:52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은 지난 14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에게 과거 수사 당시 작성했던 업무수첩을 보여줬다. 그는 “이를 근거로 진술했고, 이 내용을 복사해 사본으로 제출했다”고 말했다./연합뉴스TV
과거 ‘김학의 사건’ 수사 당시 윗선의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경무관)이 자신이 썼던 업무수첩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 업무수첩이 수사에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관련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업무수첩과 메모 등은 앞선 국정농단 사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사건 등에서도 ‘스모킹 건’ 역할을 해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관련 의혹을 수사중인 이른바 김학의 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은 지난 12일, 14일 두 차례 걸쳐 이 전 기획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기획관은 14일 밤 조사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에게 "수사기획관으로 근무할 당시 날짜별로 내용을 메모한 것을 복사해 검찰에 제출했다"면서 ‘2013년’과 ‘경찰청 마크’가 찍힌 수첩을 들어 보여줬다. 이 전 기획관은 "2013년 1월부터 4월까지의 내용을 전부 냈다"고 했다.

이 전 기획관은 2013년 4월 김 전 차관의 성관계 동영상 내사를 진행한 특별수사팀의 책임자였다. 그러나 갑자기 보직발령을 받고서 4개월 만에 경찰대학 학생지도부장으로 전보됐다. 이 전 기획관은 이후 본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방청 등을 전전하다 승진하지 못한 채 경찰을 그만뒀다. 이와 관련해 이 전 기획관은 "당시 갑자기 (학생지도부장으로) 발령이 났고, 발령 사유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기획관 등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김 전 차관이 차관으로 임명되기 전 관련 첩보를 만들어 청와대에 의혹을 수차례 보고했는데, 이 보고가 ‘보복인사’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기획관의 업무수첩에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내용이 담겨 있는지가 관건이다. 우선 당시 경찰이 민정수석실에 김 전 차관의 비리와 관련된 보고를 한 시점이 김 전 차관 임명 전인지, 이후인지 여부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이 임명되기 전에는 정보보고 차원의 보고를 했고, 내사사건으로 입건한 뒤에는 정식 보고를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곽 의원 등은 "경찰이 김 전 차관 인사 발표 이후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고, 앞서 왜 제대로 알리지 않았는지에 대해 확인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혹은 당시 김 전 차관 관련 수사를 진행한 이 전 기획관과 수사팀 관계자들에 대해 보복인사를 내는 데 곽 의원 등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곽 의원 등은 "경찰 인사는 정무수석실 소관이지 민정수석실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 전 기획관의 업무수첩에 이런 정황이 담긴 메모가 있는지 검찰은 분석 중이다.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지난 14일 검찰 조사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TV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검찰에 곽 의원 등을 수사하라고 권고하면서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곽 의원 등이 김 전 차관 사건이 불거진 이후 경찰 수사지휘라인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이 전 기획관 등을 인사조치하고, 당시 수사 책임자들을 질책하거나 ‘김학의 동영상’을 감정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등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앞선 대형 사건에서는 업무수첩, 일기장, 메모 등이 혐의를 밝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정농단 사건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는 각각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이규진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에서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이 혐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 측에서 직접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은 일방적인 주장이겠지만 일기장이나 업무수첩은 성격이 다르다"며 "작성 시기가 명확하고 연속적으로 기록돼 있다면 신빙성이 인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다만 조작 흔적이 엿보이거나, 작성 시점을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메모는 증거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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