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2.5배 뛴 임금… 구두 단가도 이탈리아보다 높다

김성모 기자 김지섭 기자
입력 2019.04.15 03:00

[오늘의 세상]
인건비 급격히 올랐지만 노동생산성은 미국 등 선진국의 절반
中企 매출의 17%가 임금으로… 대기업 신입 연봉, 日보다 높아

"도대체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은 어디로 간 걸까요. 국내 공장에서 만든 구두보다 이탈리아에 외주(外注) 준 구두 단가가 더 싸다면 믿겠어요?"

25년간 구두를 생산해 온 김모(58) 대표는 "인건비가 너무 올라서 언제까지 한국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똑같은 구두에 '메이드 인 코리아'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박혀 있으면 전 세계 소비자들 손이 이탈리아산(産)으로 향할 게 뻔한데, 한국에서의 생산 단가는 오히려 급등한다는 것이다. 이 공장에서 만든 구두 단가가 10만원이라면 이탈리아에선 10만원 이하도 가능하고, 스페인·포르투갈에선 7만원이면 된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14일 본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집계하는 국가별 임금 통계, 평균 연봉, 노동생산성 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지난 20년간(1997~2017년) 시간당 임금이 2.5배(154.1%) 이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76.3%)의 2배, 독일(54.9%)의 3배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2017년)은 미국의 54%, 독일의 57% 수준으로 절반을 간신히 웃돌았다. 여기에 최저임금 상승으로 지난해 시간당 임금은 5% 급증, 여타 주요국(1~3% 수준)보다 '인건비 충격'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한국의 빠른 인건비 상승 속도를 노동생산성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산업 현장에선 고통이 커지고 있다. 2017년 한국의 평균 연봉(구매력 평가 지수 기준)은 3만5191달러로 주요 선진국 턱밑에 도달했다. 그러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한국의 경우 34.3달러로 우리와 연봉이 비슷한 이탈리아(47.9달러)의 72%, 일본(41.8달러)의 82% 수준이다.

◇"용접 로봇 들여야겠어요"

인천에서 기계부품을 납품하는 A사 사장은 치솟는 인건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작년부터 관리직 직원부터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했다. 이 회사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15년 13%에서 2016년 15%, 2017년엔 17% 등 해마다 꼬박꼬박 2%포인트씩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임금 상승은 유독 빠르다. OECD 회원국의 시간당 임금 상승률(1997~2017년)을 보면, 20년 전보다 시간당 임금이 100% 넘게 오른 나라는 한국을 비롯, '유럽의 공장'으로 통하는 헝가리·폴란드 등 5국에 불과하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임금 상승률이 60~80% 수준이었고, 일본은 되레 쪼그라들었다. 2017년 일본의 시간당 임금은 1997년보다 9.3%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실제 일본·한국의 초봉을 비교하면, 대기업은 이미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 취업 사이트(mynavi2020)와 경제단체연합회 자료를 종합하면, 소니의 대졸 신입 기본급은 216만엔(약 2200만원), 도요타자동차는 201만엔(약 204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일본 대기업 상여금이 100만엔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3000만원 초반대 초봉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올해 국내 대기업의 상여금 포함 평균 연봉(잡코리아 조사)은 4100만원에 달한다.

산업 현장에선 '인건비 몸살' 경고음이 계속 울린다. 규모가 작고 인건비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체감 고통이 더 큰 편이다. 하도급업체 B사도 마찬가지다. "인건비와 원자재 값은 마구 올라가는데 버틸 재간이 없어요. 용접 로봇을 들일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 회사 대표는 "로봇을 쓰면 로봇이 '임금 올려달라'는 말은 안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을 떠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한국에 사무소 하나 두고 생산 기지는 외국으로 돌리는 회사가 늘고 있다"고 했다.

◇"노동생산성도 따라 올라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임금 상승' 자체보다는 노동생산성이 임금 상승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임금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OECD 통계 분석 결과, 한국의 평균 연봉(2017년 기준)은 독일·프랑스·영국의 80% 안팎까지 쫓아왔는데,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이 나라들의 60% 안팎에 그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임금은 오르는데, 효율적 자원 배분 실패나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생산성이 오르지 못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A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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