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재난에 늑장 대응했다간, 해임되거나 청문회 서야"

금원섭 기자 홍연우 인턴기자
입력 2019.04.15 03:00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 기로에 선 세계: 구체적 해법을 찾아서]
ALC 참석하는 크레이그 퓨게이트 前 美연방재난관리청장 인터뷰

"재난 대응 시스템이 있어도 대응이 부실했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훈련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이 손쉽게 작동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최고의 재난 대응 전문가인 크레이그 퓨게이트(Fugate·60) 전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은 지난 14일 본지와 화상(畵像) 인터뷰를 갖고, 강원 지역 산불에 대해 "(언론 보도 등을) 충분히 읽어서 잘 알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재난 대응 시스템의 실패'는 방재 관련 기관 간의 훈련 부족에서 온다"면서 "미국에서 재난에 늑장 대응할 경우 해임되거나 청문회에 서야 한다"고 밝혔다. 퓨게이트 전 청장은 조선일보가 오는 5월 14~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주최하는 제10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한다.

◇"재난 대응의 큰 걸림돌은 관료주의"

퓨게이트 전 청장은 FEMA 재직 당시 '번개 훈련'으로 유명하다. 각 지역에 있는 재난 대응 센터를 예고 없이 방문해 가상훈련 시나리오를 하달했다. 예컨대 "강력한 토네이도 때문에 전기·전화·인터넷이 끊긴 상황에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인명 구조 방안을 내놓으라"거나 "운석이 떨어져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는데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는 등 다양한 상황을 설정해 훈련시켰다.

크레이그 퓨게이트(오른쪽) 전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은 재직 기간(2009~2017년)에 재난 대응 컨트롤 타워로서 FEMA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2012년 허리케인 샌디 발생 당시 버락 오바마(왼쪽) 미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퓨게이트 청장이 브리핑하는 모습. /크레이그 퓨게이트 제공
퓨게이트 전 청장은 "방재 관련 공무원들에게 미처 경험하지 못한 재난 상황을 불쑥 던져주고 빨리 답을 찾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면서 "어느 나라나 재난 대응 매뉴얼이 있지만 주요 재난 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은 극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관료들은 대개 온갖 규정을 만들어 놓고 정작 재난이 터지면 '규정에 없는 일'이라며 발을 빼곤 한다"면서 "정부 훈련의 기본 목적은 재난 대응의 큰 걸림돌인 관료주의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난은 관료들이 예상하고 훈련해온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부, 시민들에게 재난 대응 교육해야"

퓨게이트 전 청장은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고 바람이 강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장비를 갖춰도 대응할 수 없는 산불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이번 강원도 산불 같은 게 일어날 만한 장소를 찾아내고 그에 적합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재난 대응에 정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고도 말했다.

"재난의 최대 피해자는 정부가 아니라 시민과 사회입니다. 대형 재난이 터지면 정부의 손길이 제때 현장에 닿을 수 없습니다. 시민들이 위급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응급처치, 인명 구조, 소방 등 기본 교육을 사전에 실시해야 합니다."

그는 ALC에서 "나의 오랜 재난 대응 경험 중에 실패 사례와 그로부터 배운 내용을 얘기할 것"이라며 "과거의 실패를 기록하고 분석해두지 않으면 또 재난에 당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퓨게이트 전 FEMA 청장은] 소방관으로 시작해 美 재난 대응의 전설이 된 사나이


2009~2017년 미국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인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을 지낸 크레이그 퓨게이트는 '재난 대응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정치인 출신이 FEMA 청장에 임명돼 재난 대응 역량이 크게 약화됐던 FEMA를 혁신한 인물이다.

퓨게이트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고등학생 때 의용소방대원이 됐고, 고향 플로리다주가 운영하는 소방대학을 마쳤다. 주 산하 지방자치단체 소방관과 응급요원으로 허리케인 등 대형 재난 현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2001년 공화당 소속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주(州) 재난관리청장에 임명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퓨게이트는 "아버지가 6·25전쟁 때 미 육군으로 참전했었다"면서 "이번 ALC 참석을 계기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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