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일흔다섯 번째 봄… 여전히 창작의 꿈을 꾼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2019.04.15 03:00

[열 번째 시집 '화살시편' 출간, 김형영]
만물을 꿈꾸게 하는 봄… 詩 쓰기 가장 좋은 계절
20년 동안 관악산 오르내려… 나무 뚫고 나온 어린잎도 소중

김형영(75) 시인이 열 번째 시집 '화살시편'(문학과지성사)을 최근 냈다. 1966년 등단한 김 시인은 지금껏 낮고 여린 음성의 서정시를 주로 써왔다. 현대문학상·한국시협상·가톨릭문학상·육사시문학상·구상문학상·박두진 문학상·신석초 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시집은 그가 지난 5년간 쓴 시 71편을 모았다. 수록작 중 절반이 봄을 노래한 시집이다. 시인은 "사계절 중에서 봄이 시 쓰기에 가장 좋으니까"라며 "어쩌다 보니 봄을 맞아 냈다"고 말했다.

김형영 시인은 "꽃 중에서 진달래를 가장 좋아하는데, 마음으로 말을 걸면 진달래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수록작 중 시 '제멋에 취해'는 '세상을 흔드는 봄바람에/ 만물은 꿈꾸기에 바쁘다'고 시작한다. '제 향기에 취해/ 봄바람 품어 안고/ 모두 어디로 떠나려나./ 하느님도 몸을 푸는/ 봄이 일어서는 날'이라고 노래했다. 시집의 뼈대를 이룬 29편의 연작시 '화살시편'에도 봄내음이 짙다. '봄바람 없이/ 무슨 꽃이 아름답고/ 봄바람 없이/ 무슨 잎은 생기를 돋우며/ 봄바람 없이/ 무슨 새가 울겠느냐// 그 많은 소문은/ 누가 있어 퍼뜨리나'('화살시편4-소문').

20년 동안 관악산을 오르내렸다는 시인은 "두꺼운 나무껍질을 뚫고 눈뜨는 눈곱 연한 눈엽(嫩葉·어린잎)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봄은 생명 탄생의 상징이고, 하느님과 같은 창조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시인은 하느님을 향해 짧게 올리는 '화살기도' 영향을 받아 단시(短詩) 연작 '화살시편'을 써냈다. '그새 새끼를 가졌구나// 비 맞은 거미줄 뒤에 숨어/ 하늘을 바라보는 거미여'라고 짧게 노래한 것. 시인은 "어느 소나기 내린 다음 날 우연히 거미줄을 보았는데, 거미줄에는 빗방울만 걸려있고 모기 새끼 한 마리 걸려있지 않았다"며 "새끼를 품었지만 배고픈 거미가 거미줄 뒤에서 마치 하늘을 향해 원망하는지 애원하는지 모를 그런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측은지심이 들어 단숨에 썼다"고 털어놓았다. "거미만을 생각하며 썼지 결코 인간을 비유해서 쓴 게 아니다. 인간이나 거미나 똑같은 생명체이고, 인간이 상위(上位)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것.

'화살시편'은 현실 풍자도 담았다. '정말 못 당하겠네/ 밤을 낮이라 하고/ 낮을 밤이라 우기는 놈들// 올빼미 너냐?/ 아니면/ 너 말고/ 또/ 누구냐?//나냐?'라는 것. 시인은 "요즘 정치나 종교가 떼로 모여 우기는 시대를 좀 비유적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화살시편'은 앞으로 100편까지 쓸 생각이라고 한다.

시인은 30년 전부터 '수평선' 연작시를 가끔 써왔다. 이번 시집에선 수평선을 가리켜 '이젠 네 마음 알았으니/ 그냥 거기 있거라'라며 '한 처음 하느님이/ 그리움 끝에 테를 둘러/ 경계를 지었으니/ 그냥 여기서 바라보며 그리워하마'라고 했다. 시인은 "그리운 것은 멀리 두고 바라봐야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평선을 바라보면 한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떠오르곤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3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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