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58] 봄봄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2019.04.15 03:08

봄봄

그 봄으로 한 여자가 입장한다

망할 놈의 봄비
망할 놈의 제비

그 봄에 한 여자가 아프다

봄이 두개라면
봄이 두부라면

그 봄에 한 여자가 웃는다

자신이 끌고 다닌 바퀴 달린 가방처럼
테두리가 사라지고 있는 영혼처럼

다시 테두리로 되풀이되는
다시 테두리만 되풀이되는

ㅡ안현미(1972~ )

봄을 보니 봄은 여럿입니다. 그중 참담한 봄도 있음을 소개합니다. '곰곰'(이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봄'이라는 무대는 화사하고 싱그럽지만 아무나 '입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겨우 입장을 허락받은 한 여인이 '봄'으로 들어섰습니다. 힘겹게 겨울을 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축복과도 같은 단비, 그리고 상가수(上歌手)의 노래처럼 유연한 제비들의 활공이 '망할 놈의' 것이 된 이 여인에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아픈' 이 여인은 봄이 하나 더 있으면 하고 되뇝니다. '봄이 두 개라면 / 봄이 두부라면'(여기 두부는 음식이어도 좋고 문서라는 의미여도 좋습니다) 하고. 그러고는 그 하나의 가상의 봄을 상상하며 허하게 웃습니다. '바퀴 달린' 트렁크처럼 떠도는 이 여인에게 봄은 '테두리만 되풀이되는' 서글픈 서정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봄에 유독 아픈 옹이들이 많이 박혀 있습니다. 오늘도 찬란한 저 봄 꽃나무 아래에서 마냥 즐겁지만 말고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조선일보 A34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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