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단발령 저항했던 민족인데… 어쩌다 삭발 공화국 됐나

안영 기자
입력 2019.04.12 15:28

삭발의 사회학

지난 1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기도 포천 시민 1만3000여 명이 ‘7호선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촉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단체로 삭발식을 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
#1.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한 인재(人災)로 판명되면서 지난 2일 포항시 중앙상가에서 '포항지진 피해배상 및 지역재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범시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이강덕 포항시장과 서재원 포항시의회 의장은 삭발했다. '삭발식'은 애초 행사 식순에 없었다. 이 시장과 서 의장은 "관련 지자체의 인허가 책임도 있어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사과의 의미로 삭발하겠다"고 말했다.

#2.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지난 2월 '한국 의료제도 정상화'와 '건강보험수가 정상화'를 외치며 서울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앞마당에서 세 번째 삭발식을 가졌다. 최 회장의 삭발 투쟁은 이번이 세 번째. 2017년 11월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저지를 위해 청와대 앞에서, 지난해 10월엔 진료의사 법정구속에 항의해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앞에서 했다.

대한민국에 '삭발'이 만발하고 있다. 왜 너도나도 머리를 미는 것일까.

단발령(斷髮令), 차라리 내 목을 쳐라

삭발을 감행하는 데엔 이목을 집중시켜 언론의 관심을 끄는 목적이 크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자해를 통해 투쟁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방법은 단식, 삭발, 혈서, 분신, 할복 등이 있지만 가장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게 삭발"이라고 했다. 머리는 다시 자란다. 삭발은 원상 복구 가능한 제스처란 얘기다. 그럼에도 순간의 시각적 효과를 노릴 수 있어 애용된다.

삭발이 파급력을 갖는 배경엔 유교 문화가 있다.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뜻으로 '효경(孝經)'의 첫 장 개종명의(開宗明義)편에 등장한다. 머리털을 지키는 게 효의 시작이니,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불경의 시작이다.

'머리털 사수'를 위한 항거의 역사도 있다. 구한말 단발령에 맞서 싸운 얘기다. 1895년 일제가 단발령을 내려 고종을 필두로 전국의 선비들에게 상투를 자르라고 명했다. 이에 을미의병이 봉기했다. 김광억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는 "을미의병은 '머리를 자르는 것'에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반감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라며 "당시 사람들은 단발령을 '인륜을 파괴하는 야만'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털을 자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한국에만 있는 정서는 아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전통이다. 문화평론가 김성수씨는 "일본에도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화 명목으로 '촌마게(일본식 상투)'를 자르라는 명이 떨어져 반발이 심했다. 중국 청나라 시기에도 변발 풍속이 '오랑캐의 머리'라며 한족의 반감을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삭발은 쇼인가

근대 이전 머리카락을 '지키는 것'이 인륜과 전통의 상징이었다면, 근대 이후엔 머리카락을 '버리는 것'이 '결연한 투쟁 의지'를 보여주는 행위가 됐다. 하재근씨는 "근대 이후 머리카락을 '버리는 것'은 비일상적 행위이자 충격적 행위로 간주됐기 때문에 항거의 상징이 되었다"며 "독재정권 때 대학생들이 투쟁에 들어가기 전 삭발하는 게 관례화됐던 것이 그 예"라고 말했다.

빈번히 일어나니 퍼포먼스화되는 경향도 있다. 지난 1월 16일 경기도 포천 시민 1만3000여명이 광화문광장에서 '7호선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촉구하면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당시 시민 1016명이 광화문광장 복판에서 단체 삭발식을 하면서 화제가 됐다. 조용춘 포천시의회 의장·강준모 부의장부터 여성단체, 장애인단체 회원들까지 삭발에 동참했다. 당초 500명으로 계획했던 삭발 인원은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광화문 광장은 전례 없는 '대형 삭발 시위'를 구경하러 온 시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꽹과리와 북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단상 위 빨간 띠를 두른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눈을 감고 결연한 표정으로 머리를 밀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길연 포천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눈길 끌기용이란 지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포천시민에겐 절박한 사안이었다"며 "500명 가까이 삭발을 릴레이로 할 경우 언론에서 더 주목해줄 거라 생각했고 삭발이 다른 방식보다 상징적으로 강력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목적이 의심받기도 한다. 지난 2일 '기습 삭발식'을 거행한 이강덕 포항시장에 대해서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관심 끌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부 시민은 "사과의 의미라면 절을 해야지 굳이 불필요하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삭발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박재관 포항시청 보도팀장은 "지진 이재민 200여명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특별법을 1년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했다.

착한 삭발

삭발이 늘 투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제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지난 2013년 미국 전·현직 대통령 최초로 삭발한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냈다. 두 살이던 경호원의 아들 패트릭이 백혈병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을 잃은 것이 계기였다. 당시 패트릭 아버지의 동료 26명이 아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동반 삭발'을 감행했다. 부시 역시 같은 결정을 내렸다. 동료애와 연대감의 표현이었다.

이 일화는 부시의 인간적 매력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등장한다. 지난해 11월 그가 타계했을 때 언론은 휠체어에 몸을 싣고 머리를 깎은 부시가 패트릭을 안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언급하며 그의 생전 모습을 기렸다. 네티즌들은 "그가 머리를 깎으며 권위도 함께 내려놓았던 걸 기억한다"며 애도했다.

항암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 암 환자의 가족이 투병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삭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불 같은 삭발만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삭발도 있다.

조선일보 B8면
땅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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