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5일장·벼룩시장이 아닙니다… SNS로 활동하는 '현대판 보부상'들의 전국구 마켓

대전·부산·청평=박근희 기자
입력 2019.04.13 03:00

콘텐츠 넘치는 전국구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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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을 이룬 5년 차 마켓 ‘문호리리버마켓’은 매 주말 경기·강원 주요 명소를 순회하며 열린다. 사진은 지난 3~4일 경기도 청평 복합리조트 단지 ‘무아레478’에서 열렸던 ‘문호리리버마켓 초대 마켓’.
완연한 봄이다. 주말마다 크고 작은 플리마켓(flea market·이하 마켓)이 전국에서 열린다. 옛날 5일장이나 벼룩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가 유통망으로 뜨면서 요즘에는 ‘세포마켓(cell market·세포 단위의 1인 유통 시장)’도 이 공간을 장터처럼 쓰고 있다. SNS를 뜨겁게 달구는 아이템과 다양한 장르의 수공예, 디자인 제품, 먹을거리, 생활 잡화 등을 사고 판다. 지역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일부 유명 마켓은 전국을 순회하며 ‘원정 마켓’을 열기도 한다. ‘21세기 보부상’이다. 이들이 모이는 전국구 마켓을 찾아갔다.

SNS 속 인기 맛집과 상품 한자리에

지난 6일 부산 KNN 방송국 앞 KNN 광장에선 경남권 대표 마켓인 마켓움이 열렸다. 160여 팀이 참가해 판매·홍보·체험용 부스를 꾸몄다. 아이디어 넘치는 반려동물 용품, 독특한 디자인의 라탄(등나무 공예) 소품, 각종 수공예·수입 그릇, 수제 먹을거리, 옷,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핸드 페인팅 가방, 고가구…. 각양각색 제품들이 넘쳐났다. 각 부스는 미니 쇼룸, 포토존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감각적으로 꾸며 관람객은 사진 찍느라 바빴다. 광장 중앙엔 DJ 부스가, 한쪽엔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관람객은 마켓에서 도시락, 음료 등을 사 먹으며 봄소풍을 즐겼다.

이날 셀러(판매자)들은 부산 출신이 많았지만 전국 각지에서 온 셀러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경기도 의정부의 ‘석희테이블’ 김석희씨는 양념 새우장과 간장 새우장을 준비해 내려왔다. 시식용 새우장은 내놓기 무섭게 소진됐다. 마켓움에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김씨는 “브랜드를 알리러 왔는데 현장 판매용으로 준비한 게 반나절 만에 거의 팔렸다”고 했다. 남해의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앵강마켓’에선 멸치가 등판했다. 대구에서 온 ‘말랭이여사’ 부스에선 건조 간식을, 용인의 ‘동춘상회’ 부스에선 용인산(産) 백옥쌀로 만든 튀밥을 관람객에게 건넸다. 행사 시작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준비해온 제품이 동나 ‘sold out’ 메모를 임시로 써 붙인 곳도 있었다. 포장과 진열까지 감각적이라 보는 재미를 더했다.

감각적인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던 ‘마켓움’의 셀러들.
나들이 명소 된 경남권 '마켓움'

올해 4년 차에 접어든 마켓움은 경상권에서 ‘흥행 보증 마켓’으로 통한다. ‘볼거리가 많다’는 소문에 열렸다 하면 관람객이 1만~2만명이 온다. 참여 문의도 전국 각지의 셀러들로부터 받는다. 봄가을이면 지자체, 백화점이나 복합 쇼핑몰, 굵직한 기업 등에서도 협업·유치 문의가 들어온다.

손지민(41)씨는 4년 전 부산 기장 동백리 바닷가에서 지인 9팀과 이 야외 마켓을 일회성으로 열었다. 이후 재개최 요청으로 2회를 열어 마켓움은 이제 한 번 개최할 때마다 셀러 100여 팀이 함께 움직이는 ‘상단(商團)’을 이뤘다. 대구의 맞춤 가구 전문 ‘장스목공방’, 수제 소스 브랜드 ‘메종드율’ 같은 브랜드는 마켓움과 함께 성장한 브랜드다.

비정기적으로 열리지만 매번 새로운 기획, 문화 이벤트가 더해지거나 경상권 대표 명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부산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부산 ‘영화의전당’ ‘대룡마을’ ‘F1963’과 양산 ‘한송예술인촌’ 등 명소에서 진행했다. 지난해 5월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제안으로 서울 ‘문화역 284’에서 ‘마켓유랑’이라는 이름으로 원정 마켓을 열기도 했다. 마켓움을 이끄는 문화기획자 손씨는 “마켓움은 단순히 판매를 위한 장터 개념이 아니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각 지역 셀러들의 제품을 선별해 소개하는 마켓이자 즐거움을 기본으로 하는 문화 콘텐츠”라며 “협업과 초청 문의는 쇄도하지만 마켓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곳에서만 연다”고 했다.

마켓움 개최 일정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공지한다. 이와 별도로 부산 기장군 리조트 ‘아난티코브’에선 2~3달에 한 번씩 마켓움의 셀러 50여 팀이 ‘아주마켓’에 참여한다. 부산 기장 바다를 배경으로 총 70~80여 팀이 모인다. 오는 27~28일에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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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지난 6일 부산 KNN광장에서 열린 경남권 대표 플리마켓 ‘마켓움’. ②‘마켓움’의 단골 셀러인 ‘다온한과’. ③'마켓움'에 참여한 ‘프롤로그’의 제품. ④‘문호리리버마켓’에 참여한 유제품 전문 ‘그 남자의 치즈가게’.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박근희 기자
지역 순회하는 '문호리리버마켓'과 '보부상마켓'

앞서 지난 3~4일 경기 가평군 복합 리조트 단지 ‘무아레 478’ 정원에선 ‘문호리리버마켓 초대 마켓’이 열렸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명물이 된 문호리리버마켓 셀러 중 1~2년차에 접어드는 셀러 26팀이 참여하는 마켓이었다. 평일인데 나들이객의 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졌다. 셀러들은 정성껏 준비해온 제품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두고 관람객을 맞았다. 직접 농사지은 표고버섯을 가져와 표고전 시식 행사를 연 ‘기리네표고’부터 모시 잎 떡에 수제 조청을 묻혀 건네는 수제 조청 전문 ‘오키 팜푸드’, 재배한 콩을 볶아 콩차 시식 행사를 펼친 ‘이민재’를 비롯해 가죽 잡화, 비누, 나무 소품, 퀼트 작품, 액세서리, 도자기, 캘리그라피 등 핸드메이드 작품 전시회 같았다.

서울 강남 은마상가에서 ‘보리 굴비’로 유명한 ‘영광상회’, 충남 금산의 홍삼 브랜드 ‘홍삼천하’ 등 전국 각지의 소문난 부스도 여럿 보였다. 영광상회 오유미(38)씨는 “보리 굴비를 알리려고 나왔다”고 했다. 참여한 셀러들은 문호리리버마켓을 ‘움직이는 상점’으로 불렀다. 이들 대부분은 문호리리버마켓을 통해 제품을 알리고 판다. 한 셀러는 “매장 운영에 대한 부담도 없고, 고정 셀러로 참여하다 보니 단골이 생겨 든든하다”고 말했다.

5년 차에 접어든 문호리리버마켓 역시 각 지자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문호리리버마켓을 이끄는 안완배(60) 감독은 “이따금 자치단체장이 직접 와서 벤치마킹을 하거나 마켓 유치를 의뢰하기도 하지만 어떤 지원도 없이 독립적으로 마켓을 열 수 있는 곳에서만 장을 펼친다”고 했다.

‘문호리리버마켓’에서 만날 수 있는 ‘레이지파머스’의 수제 가죽 가방.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박근희 기자
현재 문호리리버마켓은 매달 첫째 주 경기도 광주 곤지암도자공원, 둘째 주 강원도 양양 후진항(설악비치), 셋째 주 경기도 양평 문호리, 넷째 주 경기도 이천 도자예술마을을 순회한다(다섯째 주가 있으면 자라섬 추가). 셀러들은 개최 장소에 따라 테이블 등 장비와 제품을 챙겨 움직인다. 문호리리버마켓의 경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셀러 신청을 받는다. 고정 셀러가 형성돼 있는 문호리 외 지역만 기존 셀러에 더해 해당 지역의 셀러를 추가한다. 오는 13~14일엔 강원도 양양 후진항에서 150여 팀과 함께하는 ‘비치마켓’이 열린다.

보부상마켓
충청·전라권에서 유명하다. 2016년 12월에 수제 간식·반찬 전문 ‘시골 여자의 바른 먹거리’, 주방용품 전문 ‘쿠진’ 등 셀러 12팀이 전주 한옥마을 카페 하나를 대관해 마켓을 연 게 시작이었다. 현재까지 전주, 광주, 순천, 대전, 대구, 서울 등지에서 11회 마켓을 진행했다. 한 번 개최할 때마다 50~70팀이 함께 움직인다. 대부분 1회 때부터 함께한 고정 셀러다. 개그맨 ‘옥동자’ 정종철도 ‘옥주부’라는 브랜드로 직접 만든 나무 도마 등을 가지고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올리브 TV, 홈플러스 등과 협업해 판이 커지기도 했다. 수제 가구 전문 ‘나무 목’, 키즈 편집숍 ‘어라운드 테이블’ 등은 스타 셀러가 됐다.

보부상마켓은 현재 신규 셀러 신청을 받지 않는다. 대신 운영진이 소개할 만한 브랜드를 엄선해 개별 섭외하는 방식으로 셀러를 ‘영입’한다. 보부상마켓을 이끄는 정광복(42)씨는 “마켓은 소상공인들에게 박람회 같은 기능을 한다”며 “마켓마다 우수한 브랜드를 선별해 보여주는 게 경쟁력이 됐고, 고객도 브랜드를 보고 따라 움직이더라”고 했다. 보부상마켓은 지난 3월 22~23일 홈플러스 대전둔산점에서 개최한 후 추후 일정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으로 공지할 예정이다.

이 밖에 2040 여성 팬층이 두터운 띵굴시장도 전국구 마켓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을 거점으로 그동안 대구, 부산, 제주 등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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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지자체 축제나 관광명소에도 마켓은 빠지지 않는다. ‘영등포 여의도봄꽃축제’ 속 ‘봄꽃예술상단’ 마켓. ②서울 남산 N서울타워 앞에서 매 주말 만날 수 있는 ‘상상마켓’. ③‘문호리리버마켓’의 ‘영광상회’ 보리굴비.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박근희 기자
마켓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마켓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 ‘문화상점’엔 하루에 10여 건의 마켓 개최 소식과 30건이 넘는 셀러 모집 글이 올라온다. 관광 명소, 카페, 골목 등 마켓 개최지도 세분화되고 있다. 마켓만을 전문으로 여는 공간이나 마켓 기획 전문 업체도 등장했다. 대부분 이벤트 기획사로 셀러 모집, 장소 섭외, 행사 운영을 맡는다.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6월까지 열리는 상상마켓의 차인혁(38)대표는 “마켓 장소와 유동 인구의 특성에 따라 제품, 셀러를 모집한다”며 “N서울타워의 경우 내·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만큼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패션 액세서리, 디저트와 음료 등이 인기”라고 했다.

셀러들은 모집 공지를 보고 주말마다 움직인다. 자신이 만든 제품을 알릴 만한 곳을 파악해 공략하는 식이다. 수제 잼을 만들어 파는 김여진(32)씨는 “1인 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나 키즈맘이 많은 지역에서 열리는 마켓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마켓 개최 시기에 맞춰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부산 KNN 광장 마켓움에서 만난 주부 이유리(39)씨는 “부산 여행 중 우연히 마켓움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행 코스를 바꿨다”며 “마주치기 어려운 경남권의 ‘핫’한 제품, 맛집들이 모여 있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특정 마켓이 고른 제품을 상설로 만날 수 있는 쇼룸도 작년부터 하나둘 문 열고 있다. 경기도 용인 동춘175 내 동춘상회는 마켓움이 패션 기업 세정과 협업해 만든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이다. 마켓움에서도 한국적인 작품, 지역 특화 제품들을 선별해 전시·판매한다. 서울 을지로 ‘디스트릭트 C’, 성수동 ‘성수연방’, 잠실 ‘롯데월드몰’에 입점한 띵굴스토어는 띵굴시장과 외식 업체 OTD가 협업해 만든 편집 매장이다. 접하기 쉽지 않은 마켓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조선일보 B6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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