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라면 먹고 갈래?" 시대는 가고, 이젠 "나랑 넷플릭스 볼래?"

안영 기자
입력 2019.04.12 15:18

넷플릭스가 바꾼 연애 풍속도

일러스트= 안병현
"나랑 넷플릭스 볼래(Netflix and chill)?"

평소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 직장인 강모(31)씨는 친구에게 '홈 치맥'을 제안할 때 이렇게 묻는다. 넷플릭스에서 절찬리에 방영 중인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시즌 1에 등장한 관용어다. 한때 북미권을 강타한 이 표현은 스펙트럼이 넓다. 'chill(놀다)'이란 단어에 충실한 첫째 뜻은 '같이 넷플릭스 보면서 놀자.' 하지만 은유적으로 이성에게 '홈 데이트'를 제안하는 용례가 더 자주 쓰인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netflixandchill을 검색하면 게시물 150만개가 뜬다. 나란히 앉아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는 남녀 사진이 많다.

한국에도 비슷한 관용어가 있었다. "라면 먹고 갈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에게 한 말이다. 2000년대 후반 이 표현은 "무도(MBC 예능 '무한도전') 보고 갈래?"로 변주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가 쉬워지면서 주말 예능은 시청률 이상의 '효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2019년, 넷플릭스가 이 관용어를 가로챘다.

넷플릭스가 2030 '인싸력(주류를 의미하는 인사이더+力)'의 가늠자로 떠오르면서 연애 전선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다. 커플들의 '넷플릭스 딜레마'는 계정 하나를 공유하는 데서 비롯된다. 넷플릭스 계정 공유 서비스는 크게 스탠다드(기기 2개 공유)와 프리미엄(기기 4개 공유)으로 나뉜다. 요금을 아끼려 스탠다드 계정 하나를 구독하고 사이 좋게 기기 하나씩 점유하던 커플이 헤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대학생 김모(24)씨는 "스탠다드 요금제를 공유하던 여자 친구와 홧김에 이별하고 '기기를 해지해달라'는 말을 못한 채 연락이 끊겼다"며 "헤어지기 전에 넷플릭스 계정부터 정리할 걸 그랬다"고 한숨지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직장인 한혜선(33)씨는 "10년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싸이월드 일촌을 끊을까 고민하던 게 생각난다"며 "요즘은 애인과 헤어지면 넷플릭스 계정부터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인기를 끌면서 '넷비쿼터스(넷플릭스+유비쿼터스)'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 서울 강남에 등장한 '넷플릭스 전용 룸카페'는 시간제한 없이 '하루 종일' 시청 가능한 넷플릭스 룸을 제공한다. 경북 김천에 지난 1월 개장한 한 호텔 역시 넷플릭스 전용 객실을 마련했다. 이 호텔 관계자는 "개장을 준비하면서 시장조사를 하던 중 요즘 젊은 커플들이 '넷플릭스 되는 룸 있냐'고 물어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지나친 넷플릭스 중독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 외신은 넷플릭스 중독 현상을 '뉴 스톡홀름 신드롬(인질이 범인에 감화돼 자기가 처한 상태에 익숙해지는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이 현상은 단시간에 콘텐츠 몰아 보기가 가능한 넷플릭스 구조 탓도 있다. 직장인 박준영(31)씨는 "넷플릭스는 드라마 한 시즌을 연속해 시청할 수 있는 구조라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고 했다. 국가별 제공 콘텐츠가 다르기 때문에 '내수용 콘텐츠'를 외국에서 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열혈 시청자들도 있다. 지난 설 연휴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주모(여·32)씨는 "당시 한국에서 유행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여행 중에도 보려고 미리 한꺼번에 내려받아 놓고 일본에서 휴대폰 '비행기 모드'로 시청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5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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