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제총책에 '無名' 지방관료 김재룡 깜짝 발탁

윤형준 기자
입력 2019.04.13 03:20 수정 2019.07.26 17:20

고난의 행군 '강계 정신' 발원지인 자강도 당 위원장 출신
北전문가들조차 잘 모르는 인물… 군수공업에 수완 보여

북한이 자강도당 위원장(도지사 격)인 김재룡을 경제 사령탑으로 발탁한 건 대북 제재 효과가 본격화된 현 상황을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강도는 북한 군사산업의 '메카'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내세운 '강계 정신'의 발원지다. 북한은 군수 전문가인 리만건도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 기용했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군수산업 자원을 민간 경제에 투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北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이 1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에서 대의원증을 들어 찬성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수용·김평해·박광호 당중앙위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리만건·리수용·태종수·안정수 당중앙위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김수길 군 총정치국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신임 내각 총리로 선출된 김재룡은 그간 북한 중앙 정치에서는 무명(無名)에 가까웠다. 2010년 평안북도 당위원회 비서(현 도당 부위원장)를 거쳐 2015년부터 자강도당 책임비서(현 도당위원장)로 활동한 게 외부로 알려진 경력의 전부다. 2016년 5월 노동당 중앙위 위원에 오른 것 외에 특이 동향이 없어 북한 전문가들에게도 낯선 인물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 당 관료가 일약 김정은 체제 2기를 책임질 '경제 수장'에 발탁된 것이다. 이상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군수산업 외엔 산지(山地)라 먹고살기 어려운 자강도를 잘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깜짝 기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중앙당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당료 출신으로 안다"고 했다.

김정은이 '제2의 강계 정신'을 기대하고 김재룡을 발탁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연형묵 전 정무원 총리는 자강도당 책임비서 시절 '고난의 행군'에 잘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1998년 김정일 집권과 함께 최고 권력 기구로 부상한 국방위원회에 발탁되며 중앙 정치무대에 복귀했다. 북한 내에선 최근까지도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가 가장 모범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대북 소식통은 "김재룡이 내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것 같다"고 했다.

2016년까지 핵·미사일 개발 총책이었던 리만건의 약진도 눈에 띈다. 그는 이번에 정치국 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에도 올랐다. 북한 매체에서 박광호 선전선동부장보다 먼저 호명돼 노동당 최고 실세 부서인 조직지도부를 지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군수 전문가인 만큼 군수공업부장으로 복귀했을 가능성도 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김재룡이나 리만건의 발탁은 이들이 '군수산업'에서 쌓은 경험을 민간 경제에도 적용해 '자력갱생'을 도모해보겠다는 전략"이라며 "불법 무기 거래 등을 통해 활로를 찾겠다는 시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금수저'인 최룡해와 최선희도 승진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국무위 제1부위원장을 겸직하게 된 최룡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전우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최현은 김씨 정권 수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최룡해는 이번 승진으로 명실상부한 2인자 지위를 더욱 굳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룡해가 상징적 위상은 올라갔지만 실제 역할은 줄어들 수 있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분석했다.

김일성의 최측근이던 최영림 전 내각총리의 수양딸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국무위원에 오른 데 이어 외무성 제1 부상으로 승진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국무위원은 내각 상(相·장관급)도 겸임하는 인물이 극히 적다. 이 때문에 최선희가 과거 강석주·김계관으로 이어지는 '미국 라인'의 적통(嫡統)을 이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무위는 외무성 라인(리수용·리용호·최선희)이 통일전선부(김영철)를 압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따라서 대미(對美) 협상의 무게중심이 김영철에서 리용호 또는 최선희로 옮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최선희가 강석주·김계관을 잇는 대미 협상 총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강계 정신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경제난 극복을 위해 내건 선전 슬로건. 1998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강도를 방문한 뒤 노동신문에 처음 등장했다. 자강도 도(道) 소재지인 강계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도 노동당을 믿고 따른 정신을 본받자는 뜻이다.



조선일보 A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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