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뇌'와 싸우기 위해… 오늘도 달리고 또 달린다

곽아람 기자
입력 2019.04.13 03:00

어릴때부터 만성 우울증 겪던 저자… 달리기 통한 극복담 털어놔

나는 달리기로 마음의 병을 고쳤다

스콧 더글러스 지음|김문주 옮김|수류책방
316쪽|1만5500원

언제나 침울한 아이였다. 학대받지 않았고, 집이 궁핍하지도 않았으며, 가까운 사람이 죽은 일도 없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와 형제도 있었고 학교에서도 잘 지냈다. 그럼에도 늘 마음속은 잿빛 하늘 같았다. 학교에서 하루살이가 24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것을 배운 날엔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숙제에 집중할 수 없었다. '기분부전장애'. 저자 스콧 더글러스에게 내려진 진단이다. 만성적인 경도 우울증 상태를 말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건 1979년 3월 1일 9학년(중학교 3학년)의 봄이었다. 달리는 동안은 정신적·신체적으로 활기를 띨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일상에 체계가 잡혔고, 언제나 뭔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조금씩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책은 한국어판 부제가 말해주듯 '막연한 불안과 우울을 발로 치료한 러너의 이야기'다. 미국 달리기 잡지 '러너스 월드' 기자인 저자는 달리기를 통한 우울증 극복담을 털어놓으며 달리기가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과학적 근거를 함께 제시한다.

저자는 달리기와 우울증과의 관계를 파고들던 중 달리기가 뇌 구조를 변화시켜 '건강한 뇌'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운동심리학자 팬털레이먼 에케카키스 미(美) 아이오와대 교수에 따르면 규칙적인 달리기는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농도를 증가시키고 새로운 뇌세포를 생성한다. 항우울제 효과와 동일한 작용이다. 운동과 정신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J 카슨 스미스 메릴랜드대 교수는 "달리기를 할 때 발에 가해지는 충격이 교감신경계에 자극을 줘 뇌가 세로토닌 같은 신경 전달 물질을 저장하고 합성하며 분비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바닷가를 달리는 남자. 저자는 “내가 아는 한, 달리기는 짧은 시간 내 불쾌함을 명랑함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달리기가 수영이나 스키 같은 스포츠에 비해 특히 우울증에 효과 있는 이유는 뭘까. 달리는 사람들의 기분을 연구하는 데이비드 레이츨런 애리조나대학 교수는 "충격력이 적은 다른 활동에 비해 몸이 천연 진통 물질을 분비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근력 운동보다 유산소운동의 기분 개선 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

달리기는 명상과도 비슷하다. 저자는 "달리기와 마음 챙김(mindfulness)은 여러 면에서 통한다"고 말한다. 달릴 때는 현재에 집중하게 되며, 생각이 자연스레 들고 나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가 "바로 지금, 순간순간 펼쳐지는 경험들에 의도적으로 집중할 때 생겨나는 각성"이라는 '마음 챙김'의 정의와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옥스퍼드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음 챙김을 수련한 사람들이 항우울제를 복용한 사람들보다 우울증이 재발할 가능성이 낮다.

그렇다면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얼마나 달려야 할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어떻게 달려도 아예 안 달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썼다. 대부분의 연구에선 달리기 시작해 30분이 지나면 확실한 기분 개선 효과가 발생한다고 본다. 효과는 더 길게 달릴수록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아예 달리지 않는 것보다는 20분이라도 달리는 것이 훨씬 낫다. 뇌에서 나오는 행복 물질은 대화가 가능한 속도로 달릴 때 가장 많이 증가하지만, 힘든 운동을 하려고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몸 상태에 맞게 느리게 달리는 편이 낫다. 인공적인 환경보다는 자연 속에서 달리는 편이 좋으며, 아침 달리기가 하루 전체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므로 저녁 달리기보다 효과가 높다.

스스로와 싸우며 달리고 또 달리는 저자의 분투가 눈물겨운 책. 책장을 덮고 나면 운동화끈을 단단히 묶고 봄바람 속을 달리고 싶어진다. "우울증으로 가장 힘든 날이면 나는 스스로에게 그냥 절뚝거리는 속도로 뛰는 시늉만 해도 충분하다 말한다. 10분 후에 기분이 더 나빠진다면 속으로 '그만 집에 가도 괜찮다'고 말해도 괜찮다. 하지만 장담컨대 나는 언제나 밖에 더 오래 머물다가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갈 것이다."(71쪽) 원제 Running Is My Therapy.


조선일보 A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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