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하층민을 '쓰레기'라 부르는 미국

김태훈 기자
입력 2019.04.13 03:00 수정 2019.04.19 18:11

알려지지 않은 미국 400년 계급사

낸시 아이젠버그 지음|강혜정 옮김|살림
752쪽|3만8000원


미국에도 당연히 하급 계층이 존재한다. 주로 흑인이나 히스패닉을 떠올리지만 백인도 있다. 그런데 미국 백인 주류 사회가 같은 백인인 하층민을 부를 땐 더 잔인하고 모욕적인 표현을 쓴다. 백인 쓰레기라는 뜻의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게 부푼 남부 지역 노동자인 레드넥(redneck), 이동 주택을 타고 떠도는 트레일러 트래시(trailer trash) 등 온갖 멸시의 표현이 동원된다. 백인종의 수치라는 경멸적 시선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십이지장충에 집단 감염된 미국 남부의 하층민 가족. 백인 주류 사회는 가난한 백인들을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고 부르며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했다. /살림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런 멸시의 기원을 찾기 위해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하던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독립운동사에 등장하는 '평등하고 기회로 충만한 미국' 이미지는 조작이라고 단언한다. 영국의 식민지 건설자들에게 신대륙은 자국의 가난뱅이와 범죄자 등을 흘려보낼 하수구이자 쓰레기 처리장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회 통합이라는 신화 아래 잊혔던 16세기 이후 400년간의 미국 하층민 삶을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숱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우생학이 지배하던 19세기 미국에선 열등한 인간을 처형하자는 극단적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됐다. 미국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쿤타 킨테 가계(家系)를 다룬 실화 소설 '뿌리'에 열광했는데, 작가가 흥행을 위해 지어낸 거짓 이야기임이 들통났다. 혈통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이 빚은 해프닝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계급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평가했다는 점에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선일보 A17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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