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를 평화로 바꾼 2000㎞의 여정

이한수 기자
입력 2019.04.13 03:00

통신사의 길을 가다

서인범 지음|한길사|808쪽|2만8000원

"나는 관동(關東)에 있었기 때문에 임진년 일에 대해서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히데요시의 잘못을 바로잡았습니다. 조선과 나는 원한이 없습니다. 화친하기를 바랍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로 패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는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가 저지른 조선 침략에 자신이 관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하고 국교 재개를 요청했다. 조선은 이를 받아들여 1607년 사신을 파견했다. 이후 1811년까지 조선의 사신 일행이 모두 12차례 바다를 건넜다. 처음 세 차례는 '회답 겸 쇄환사'라고 했지만 4차 파견 때부터 믿음을 통하는 사신 '통신사(通信使)'로 이름을 바꾸었다.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오는데 6개월~1년 정도 걸렸다. 저자 서인범 동국대 교수는 총 2000㎞에 이르는 통신사의 여정 중 58곳에 이르는 주요 경유지를 답사하고 역사적 실체에 접근했다. 지역 박물관에서 관련 사료를 보고 현장에서 만난 여러 일본인 인터뷰를 더해 여행기이자 르포 문학으로도 읽힌다.

‘조선통신사 행렬도’의 일부. 가운데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통신사 정사(正使). /한길사

조선인의 코와 귀를 묻은 교토 이총(耳塚)에는 비교적 솔직한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조선반도 사람들의 끈질긴 저항 때문에 패퇴로 끝났다. 전쟁이 남긴 이 이총은 전란으로 피해를 본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유훈으로서 오늘에 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시대 3대 무장으로 꼽으며 높이 평가한다. 이런 역사 인식의 간극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충돌하는 요인일 것이다.

통신사를 맞았던 일본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는 "조선과 교류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의 정서와 그 정세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반대로 해석하면 일본의 정서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일본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라고 했다. 무조건 거부하고 배척하는 태도로는 꼬이고 얽힌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A16면
베르나르 뷔페

오늘의 정보